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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내의 큰소리 나의 큰소리

by 답설재 2022. 11. 3.

 

 

 

평생 죽은 듯 지내던 아내도 오기가 발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저 사람에게 막 대해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나에게 막 대하고도 남을 만한 일을 충분히 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백 번은 생각해 놓고는 아내의 그런 반응을 눈치채는 순간 '이것 봐라?' 하고 이번에는 나의 진짜 오기를 발동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큰소리를 냅니다. 말하자면 일이 어떻게 되든 일단 나의 오기를 발동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는 그만 입을 닫고 맙니다.

그리고 그게 또 나를 괴롭힙니다. '아, 내가 이러지 않겠다고 백 번을 다짐해놓고 또 이렇게 했구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에는 "동정을 요구하며 사정없이 내리치는 메마른 아라비아의 신월도(新月刀) 같은 부친의 몸이 모친의 폭발하듯 치솟는 생명력을 모두 들이마시고 있는 것을 느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다시 "생기를 되찾고, 새로운 용기를 얻고서 꽃잎이 한 겹 한 겹 오므라지듯 몸이 수축하여 전체가 피로에 지쳐 폭삭 주저앉듯이 가라앉아" 버린다는 문장이 이어졌습니다.

 

글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소설을 두 번째 본 것이 2018년 봄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요즘 말로 1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초지일관도 아닌 건 잘 압니다. 죽으면 달라지겠지만 그땐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다 잘 압니다. 알아야 할 것은 충분히 압니다.

텔레비전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뻔질나게 나오고 그런 사람이 보일 적마다 나는 속으로는 움찔합니다.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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