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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름다운 오후의 쓸쓸한 장례식

by 답설재 2022. 5. 7.

 

 

W. G.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는 그냥 재미 삼아 쓴 소설은 아니었다. 순전히 우수(憂愁)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독후감을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그 석연치 않음으로 우수의 사례를 옮겨 써 보자 싶었는데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라놓은 것이 우선 옮겨 쓰기에는 너무 길었다.

어쩔 수 없어서 발췌를 해보았는데,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버려서 제목도 저렇게 '아름다운 오후의 쓸쓸한 장례식'이라고 아버지 이야기에 따르게 되었다.

 

 

1862년 끝여름 무렵 마담 에벨리나 코르제니오프스키는 당시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들 테오도르 조지프 콘래드를 데리고 포돌리아(지금은 우끄라이나 서부지역으로 당시는 러시아령 폴란드였다)의 작은 도시 치토미르를 떠나 바르샤바로 갔다. 문학활동과 정치적 음모활동을 통해 무수한 사람들이 염원하던, 러시아 폭정에 대항하는 봉기를 준비하는 일을 도울 생각으로 이미 그해 초에 별 벌이가 되지 않던 토지관리인 자리를 떨쳐버리고 떠난 남편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9월 중순에는 불법 조직인 폴란드 국민위원회의 첫 회의가 바르샤바에 있던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집에서 개최되었고, 그 뒤 몇 주 동안 어린 콘래드는 분명 수많은 비밀스러운 인물들이 부모님의 집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

약식 군사재판을 거쳐 아버지에게 내려진 선고는 니즈니노브고르도(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도시) 뒤편의 황무지 어딘가에 위치한 황량한 땅 볼로그다로의 추방령이었다.

(...)

노보파스토프를 떠난 뒤 십팔 개월이 지난 1865년 4월 초, 서른둘의 에벨리나 코르제니오프스키는 결핵이 그녀의 몸속에 펼쳐놓은 그늘과,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은 향수 때문에 유형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생존 의지도 거의 다 소진되고 만다. 그토록 잦은 불행에 짓눌려 지내야 했던 아들을 교육하는 데 제대로 열의를 보이지도 못한다. 그 자신의 작업에는 거의 손대지 않는다. 기껏해야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 번역원고를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몇 줄 손보는 게 전부다.

(...)

오스트리아 분위기가 너무 강하게 느껴졌던 람베르끄(우끄라이나 서부의 도시)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결국 그는 크라카우(폴란드 남부의 도시)의 포젤스카 거리에 방 몇 개를 구해 입주한다. 여기서 그는 세상을 뜬 아내와 자신의 실패한 삶, 그리고 「요한 소비에스키의 눈」이라는 애국적인 극작품을 막 완성한, 불쌍하고 외로운 아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젖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꼼짝 않고 안락의자에 앉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이 써놓은 원고를 모조리 벽난로에 넣고 불에 태워버린다.

(...)

애국자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장례식은 대규모의 침묵시위가 되었다. (...) 열두 살 소년 콘래드를 상주(喪主)로 삼아 맨 앞에 내세운 장례행렬은 좁은 골목을 벗어나 도심을 거쳐갔고, 마리엔 교회의 서로 모양이 다른 두 탑을 지나 플로리안 문 쪽으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오후였다. 푸른 하늘이 궁륭처럼 집들의 지붕 위로 솟아 있고, 높이 뜬 구름은 범선 편대처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고 있었다. 장례식 중에 은실로 수놓은 묵직한 예복을 입은 성직자가 구덩이에 누운 망자를 위해 주문을 웅얼거릴 때, 어쩌면 콘래드는 고개를 들어 난생처음 보는 이 구름 범선들의 장관을 쳐다보다가, 폴란드 지방귀족의 아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선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여러 일에 연루되고,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며, 그와 동년배이지만 이미 과부가 된 정체가 모호한 부인의 유혹에 넘어간다.

 

『토성의 고리』 5장에서

 

 

그만두어야 하겠지.

콘래드 코르제니오프스키가 바다를 떠돌고 아프리카로 어디로 세상을 전전하는 이야기, 벨기에 등 유럽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못살게 덜덜 볶고 발라먹은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그의 생각이 여실히 나타난 부분이 아닌가 싶은,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다.

그가 아프리카로 향하던 중이었다.

 

테네리페 섬(북아메리카 모로코 근해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에서 이미 그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아름다운 고모 마르그리트 포라도프스카에게 브뤼실로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인생이란 좋든 싫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희비극―꿈은 많고 행복의 빛은 드물며, 약간의 분노에 환멸이 더해지고, 고통의 세월 뒤에 끝이 오는 것이지요―이라고 썼다.

 

아~ "인생이란 좋든 싫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희비극―꿈은 많고 행복의 빛은 드물며, 약간의 분노에 환멸이 더해지고, 고통의 세월 뒤에 끝이 오는 것"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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