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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서귀포 이종옥 선생님

by 답설재 2021. 9. 16.

2021.9.9. 답설재의 저녁

 

 

 

 

오랫동안 교육부에서 근무하다가 용인 성복초등학교에 가서 이종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 선생님들은 모두 이종옥 선생님 후배여서 그분을 "왕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왕언니"라는 호칭은 거기서 처음 들었기 때문에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아주 미워했습니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교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나를 그렇게 미워한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교육부에서 교장이 되어 온 것이 미운 것이 아니라 교육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미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부에서 교장이 온다고 해서 당장 사직을 하려다가 교육부에서 근무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교원들이 그렇게들 미워하는가 직접 만나보기나 하고 명퇴를 하겠다"고 그 학교 교직원들에게 공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다른 분들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분 같진 않다 해도 내가 온다는 소식에 온통 뒤숭숭했을 건 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근무했습니다.

교육부에 있다가 학교에 나가니까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예쁘고 착하고, 말도 못 할 정도로 귀여워서 줄을 세워놓고 한 명씩 꼭꼭 꼬집어주거나 깨물어 먹어버리고 싶었고, 선생님들은 아무런 항의를 하지도 않고 그저 "예" "예" 할 뿐이어서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가 뭐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 하고 일부러 연극을 하는 것인가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종옥 선생님은 시원시원한 여성이었고, 너무나 한적해서 차라리 우울한 나에게 토요일만 되면(아, 그땐 아직 토요일에도 등교해서 오전 수업을 했었지요) 점심을 함께하고 가자고 했습니다. 내가 몇 살 더 먹었을 것 같은데 그분은 내게 늘 누나처럼 대했습니다.

그 선생님과 함께한 세월은 꿈결 같았습니다. 성복초등학교에서의 세월이 그랬습니다.

 

이 선생님은 지금은 서귀포에서 지냅니다. 우리 부부는 연전에 그 댁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가까이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는 곳도 그 선생님께 보여주고 싶긴 합니다.

 

일전에 뭐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기에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그리운 이종옥 선생님, 날이 갈수록 더 그리운 선생님"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분이 또 이런 답신을 보냈습니다.

 

옛적 사모님 꼬실 때(죄송^^) 이렇게 해서 마음을 얻으셨지요? ㅋㅋ

제 사십여 년의 교사생활 중에 존경하는 은사님이자 선배님, 인생에서도 따라 하고 싶은 분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모시고 같이 근무했다는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형○○와 그 부모님들이 저의 집에 와서 하루 종일 같이 얘기하고 점심 저녁을 먹으며 교장선생님의 파란편지가 우리 모두가 일주일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다고 얘기를 나누었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편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사악한 인간일지라도 한두 명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건 흔히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종옥 선생님은 내게는 그 한두 명 중의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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