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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W.G. 제발트『이민자들』Ⅲ (나는 나의 주인인가?)

by 답설재 2022. 1. 2.

W.G. 제발트(소설) 『이민자들』

이재영 옮김, 창비, 2008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 내 밀밭은 눈물의 수확이었을 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거의 십 년 전의 이 메모를 꺼내보았다.

이런 기막힌 인생도 있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는 남달리 기품 있는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최상류층 집안에서만 일했으므로 인맥이 많아 고향(독일)에서 온 가족과 친지들에게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독일에서 거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으므로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매년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맨해튼으로 상륙하여 바워리가와 로우어 이스트 싸이드에 집결했다.

 

그는 1886년 독일 켐프텐 근처 고프레히츠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첫 번째 사내아이였다. 그러나 두 살도 채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다. 큰누나가 열일곱 살 때였다. 다섯 쌀 때 일을 시작해서, 장이 서는 날에는 누나와 함께 버섯이나 열매를 팔러 나갔다.

 

그는 열네 살 때 고향을 떠나 며칠 만에 몽뜨뢰의 에덴 호텔 수습사원으로 취직했고, 곧 호텔 생활의 온갖 비밀들을 알게 되었으며, 프랑스어도 완벽하게 배웠다.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처럼 약간 바꾸기만 하면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멋진 뉴욕식 영어, 우아한 프랑스어, 아주 섬세한 표준독일어를 구사했고, 일본어에도 서툴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수습기간을 마친 암브로스는, 1905년에 런던으로 건너가 해변에 있는 사보이 호텔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상하이에서 온 여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본인은 그녀가 자신의 "슬픈 인생의 출발점에 있었다"는 정도만 이야기했다. 1907년, 그는 일본 사절단의 참사관을 따라 코펜하겐과 리가, 쌍뜨뻬쩨르부르끄, 모스크바를 지나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일본으로 들어가 쿄또 근처 멋진 수상주택에서 2년간 미혼인 그 참사관과 함께 시종이면서도 손님처럼 대접받으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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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건너간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는 젤리히만, 룁, 쿤, 슈파이어, 보름스 등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 은행가 집안 중 하나인 솔로몬 집안의 집사이자 관리인으로 일했다. 솔로몬 집안은 롱 아일랜드에 거대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