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미세먼지 "좋음"'

by 답설재 2017. 5. 27.






'미세먼지 "좋음"'









      1


  며칠간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하늘이 거짓말처럼 청명해서 왠지 이래도 괜찮은가 싶었었습니다.

  마치 긴 장마철이 지나고 성큼 초가을이 찾아온 그런 날들 같았습니다.

  더러 구름이 보여도 유유히 흘러가버리면 곧 맑은 하늘이 펼쳐져서 '이럴 리 없는데……' 싶었습니다.








    2


  '이럴 리 없는데…….'

  아예 초조함, 불안감을 안고 지낸 이십 대 후반부터 몇십 년 그 세월이 그랬습니다. 그 시절에 "우리"는(지금은 "우리"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 사람들이 되었지만), 누가 아파도 아팠고, 무슨 문제가 있어도 있어서 편할 날이 없었고, 지금에사 털어놓지만 교사 봉급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봉급으로 "우리"(이번에는 '아내와 나')는 "우리"(역시 '아내와 나')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겪었습니다. 전화기가 울리면 매번 가슴이 '철렁' 했는데 그것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아내는 그 증상이 더욱 깊어서 내가 보기에는 생전에 그 증상을 고치고 살아보기는 다 틀린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걸 고급스럽게는 "트라우마"라고 하는지…….


  그런 날들에는 차라리 사소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마음 편했습니다. 엎친 데 덮치는 경우가 있긴 해도 늘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3


  어제오늘의 하늘이 그때의 그 불안감, 초조함을 보여주려는 듯했습니다.

  '이럴 리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맑을 수가 있단 말인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볼일은 무슨 볼일!'(?) 들어앉아 있는 게 낫다는 것이겠지요. 노약자가 아닌 경우에는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약자, 게다가 지병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말은 하지 않지만(목숨을 이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거기에 또 무슨 요구나 불평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외출할 일이 있으면 불안해집니다.


  그런 날들은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미세먼지 나쁨" "미세먼지 한때 나쁨"이 잦고 더러 "미세먼지 매우나쁨"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워낙 그래서 어느새 "미세먼지 보통"인 날은 "좋은 날"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날들에 이어 '돌연'(그리고 '드물게') "미세먼지 좋음"이 찾아오는데 그건 뜻밖의 선물 같았습니다.

  '아, 이런! 미세먼지가 "좋음"이라니……. 이럴 수도 있나!'

  누구에게 인사하는 것이 좋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고마웠습니다.



    4


  그 선물 같은 날들이 하루도 아니고 며칠간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 날들도 있다'는 걸 기억하겠습니다. 고마워하겠습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시름없는 이 시간들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이럴 리 없는데……' 싶었고 혹 오존층인지 뭔지가 "뻥" 뚫렸는데 모르고 있는 건 아냐? 싶기도 했습니다.

  뭐, 그따위 의심은 걷어치우고 그냥 고마워하면 되겠지요.

  행복하면 행복한 줄이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우리는 방학 때만 되면 일기를 써야 했습니다. 그 일기는 몇 년 몇 월 며칠, 날씨 "맑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좀 무턱대고 "맑음"이라고 써서(하기야 내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 먹고 놀다가 심부름 하고 저녁 먹고 잤습니다."였고 혹 그렇지 않은 날은 아프거나 해서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흐린 날도 "맑음" 심지어 비 오는 날도 "맑음"이었는데('날씨라는 건 원칙적으로 "맑음"인 줄 알았던 건 아니었는지……), 짓궂은(혹은 '하릴없는' '할 일 없는') 담임선생님은 그 긴 긴 방학 동안 하루하루의 날씨를 일일이 메모해 두었다가 우리의 그 일기가 "엉터리!"라며 꾸중을 했고,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KAQFS(한국대기질예보시스템)에서 캡쳐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산  (0) 2017.06.08
반환(返還)  (0) 2017.06.01
야시장  (0) 2017.05.22
세월  (0) 2017.05.20
이 시간  (0) 201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