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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EBS 기자님, 수업이란 설명입니까? (2012.11.21)

by 답설재 2012. 11. 21.

 

 

 

 

 

EBS 기자님, ‘수업’이란 ‘설명’입니까?

 

 

 

 

 

  기자님! 저는 EBS 애청자입니다. 이른바 ‘채널 선택권’을 제가 가졌을 때만 더러 보다가 이젠 아주 ‘애청자’로 자부하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EBS 시청률이 다른 지상파 방송보다 낮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지만, 딱 한 가지! 짜증스럽고, 이해할 수 없고, 불만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수업 장면은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유독 우리나라 교실을 보여줄 때는 꼭 교사가 설명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점입니다.

 

  공감하시겠지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학생들 앞에서 그야말로 열변을 토합니다. 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루 종일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갖게 되고, 얼마나 고마운가, 얼마나 헌신적인가 싶고, 좀 저속하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봉급 이상의 일로 여길 것입니다(봉급 수준으로야 그럴 수도 있고, 정작 고된 이유는 다른데 있지만). 그런가 하면, 한결같이 폼이 나고, 그 누구도 감히 그 엄숙한 설명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교실을 보여줄 때는 ‘백발백중’ 선생님께서 설명하시고 학생들은 그 열띤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 간혹 무언가 메모하는 장면만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 교실을 보여줄 때는 학생들의 토론·작업·실험관찰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장면이 대부분이고, 교사는 필요할 때만 학생에게 다가가 도와줍니다.

 

  저는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수업이라면 당연히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설명이 유일한 방법이거나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나라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을 해봐야 뭘 이해하게 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무엇이든 설명만 들어도 다 이해하거나 다른 활동보다는 설명듣기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다른 나라 교육자들은 모두 쓸데없는 짓들을 하는 바보도 아닙니다.

 

  어느 교과 지도법에는 수업활동의 예로 토의·정리·대조·비교·요약·문답·계획·조사·추론·종합·발표·회상·연상·평가·관찰·의논·결정·분석·선택·게임·전시·번역·해석·유추·분류·읽기·쓰기·이야기하기·듣기·만들기·꾸미기·그리기·노래하기 등 서른 몇 가지가 예시되어 있습니다. 이것뿐이 아닐 것입니다. 그 외에도 얼마든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기’만 해도 그런 모든 활동들이 다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설명하고 그 설명을 듣는 일에만 ‘올인’하는 것입니까? 학교에서도 듣고, 학원에서도 듣고, 텔레비전 앞에서도 오로지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듣기를 좋아하고, 들으며 공부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다른 활동을 하면 불안해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학생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설명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종용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 그 ‘지긋지긋한 듣기’를 혐오하게 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대화와 토론, 타협이 불가능한 미숙하고 비뚤어진 사회인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들은 그것을 함으로써 배운다”고 했고, 갈릴레이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는 없다. 오직 스스로의 발견을 도울 수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아인슈타인도 “지식의 유일한 원천은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경험의 유일한 원천은 듣기”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A. 토플러는 우리나라의 이런 교육을 보고 “풀빵 찍듯 한다”고 했습니다.

 

  기자님! 우리 학생들이 불쌍하게 보이진 않습니까?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언제나 설명만 합니까? 그렇다면 다른 활동도 좀 보여주고 싶다고 하실 생각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