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학력은 누가 책임지나
학생들은 등교하는 대로 청소·독서·자습 등 아침활동을 하고 4교시 후 점심식사를 한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대체로 4교시, 다른 날은 5~7교시 후에 하교를 하거나 방과후학교 등의 활동에 참여한다.
학생들의 학교생활 시간은 이렇게 대부분 교과학습에 할애되는 것은 물론, 교사들도 그들의 교직생활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 당연히 교과지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문처리를 한 나머지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자조적 비아냥거림이 있었듯이 교과지도의 중요성이 침해되거나 그 비중이 소홀히 다루어질 때 교사들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고 “이런 상태에선 수업을 할 수가 없다”며 교장·교감 혹은 다른 교직원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까짓 거 교과지도야 어떻게 되든 봉급만 주면 좋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교과지도와 관계가 먼 교직원이 “내가 바로 학교의 주역”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해도 좋다.
학교교육의 핵심이 교과지도라는 설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종전 지방교육자치의 폐해를 단적으로 지적하라면 피상적으로는 선거제도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한 부정비리가 지적될 가능성이 높지만, 내면적으로는 교육감들이 내건 시책들을 우선한 교육행정 때문에 교과지도 즉 교육과정 운영에 소홀했다는 분석이 우세할지도 모른다.
시·군·구별 ‘교육청’을 ‘교육지원청’으로 바꿔 교사들은 수업에 전념하게 하고, 교육청은 수업지원에 전념하는 행정을 펼치도록 하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강력한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렇게 될까?’ 부정적인 예측이 있었다면, 바로 그러한 지방교육행정의 전통적 폐해 때문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 우리나라 학생들의 PISA(OECD 국제학력평가) 성적이 매번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이 본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른바 공교육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인 것도, 바로 교과지도, 즉 수업의 발전이 보편적인 방향이 아닌, 주입식 교육, 입시위주 교육에 치중되고 있는데 따른 비판이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의 배경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서울교육청에서 지난해 12월 22일에 발표한 ‘2010학년도 초·중등 교장 학교경영능력 평가계획’이다. 그 발표에 따르면,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반영했던 학력증진 성과평가(학업성취도 향상도 10점, 학습부진학생 감소비율 10점)가 폐지되고, 학생교육 성과평가(40점)가 신설됐다. 또 학생교육 성과는 △학습부진학생 지도를 위한 노력,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방과후학교 및 문·예·체 수련교육 활성화, △체벌·학교폭력 추방 등 인성교육, △소외학생 배려 등 네 가지 항목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제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한 노력은 누가 책임지게 되는가. 교사들 각자의 노력과 의무에만 맡기겠다는 뜻인가. 교장은 교장대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평가항목에 노력하게 되면 수업에 전념하고 싶은 교사들의 당연한 욕구와 충돌을 일으킬 염려는 없는가.
교육청 관계자의 설명대로 “지역과 학교별로 엄연히 존재하는 학력 차이를 무시하고 획일적 기준으로 정량평가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젠 그런 정량평가는 필요 없는 일인가. 또 “학력증진 경쟁을 조장하는 대신 학교교육력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지표를 도입했다”는 설명이 옳은 것이라면 정규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업보다 방과후학교나 부진학생지도 같은 활동이 더 실질적이고 중시돼야 하는 목표라는 뜻인가.
서울교육청의 이번 조치는 아무래도 의아한 일이다. 우리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부진학생 지도, 인성교육, 소외학생 배려 같은 평가항목들도 거의 정규 교과시간에 다루어져야 하는 교육내용들이다.
사실은 수업내용이나 학업성취도평가가 못마땅하다면 아예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 ‘지식’ ‘학력’의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은 바꾸지 않고 지엽적인 것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니까 우리나라 공교육이 신뢰를 받지 못한다.
교장이 교과지도에 대한 관심을 줄여도 좋다면 그게 어떻게 신뢰 받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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