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시인에게1 김연덕 「산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산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김연덕 산속에 묻혀 있던 우리 집에서 언니는 한밤중에도 비이올린을 켜곤 했다 언니 방 방문에는 검은색 니트를 입은 카라얀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나는 언니가 활을 꺼내 송진을 문지를 때마다 그 지휘자 옆으로 사라져버릴까 내가 모르는 부드러운 흑백의 세계로 언니가 사랑하는 외국으로 빨려 들어갈까 무서웠다 언니 방 바깥으로는 창문과 너무 가까이 뻗어 자란 나무가 있었는데 언니가 높은음을 켤 때마다 잔가지는 이곳으로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들어오기만 하면 기진한 채 가만히 누워 있기라도 할 것처럼 조금씩만 떨리곤 했다 가지 몇 개가 어둡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어린 나는 활 몇 개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거칠고 고집스러운 흑백의 사랑을 느꼈다 비가 오.. 2024. 5.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