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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친구들2

모임의 끝 코로나가 난동을 부리기 전의 초겨울에 우리는 둘이서 만났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여럿인데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사당동에서 처음 만날 때는 열 명 정도는 되었고 너도나도 그 산촌에서 태어나 서울 올라와 산다는 의식으로 서로 어깨를 올리고 잘난 척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잘난 척하는 꼴을 연출한 뒤로는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 맨 처음에 누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는 마음이 살짝 어두워지고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또?' '또!' 하게 되었고 드디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싶었습니다. O는 하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병으로 죽었습니다. 집 짓는 일을 하고 자신의 집이 열 채는 된다고 하더니 그게 다 빚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 2022. 1. 9.
우리만의 별실을 요구하는 이유 우린 우리만 있을 별실을 요구하는데, 그건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흘린 명언을 행여 누가 엿듣고 훔쳐 갈까봐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중 반은 가는귀가 먹어서 그렇다. 그 사실을 공표라도 하듯 자리에 앉으면 엄지로 보청기를 귀에 꽂는 친구도 있지만, 아직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안경을 쓴다. 우리의 전립선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있어서, 층계 끝 화장실 수통은 과부하게 시달린다. 그래도 우린 대체로 쾌활한 편이며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 ―줄리언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다산책방 2016) 134. "이야기는 익숙한 흐름을 따른다"? 우리는 만나는 그 순간을 더욱 즐거워한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 2016.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