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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정다연2

「밝은 밤의 이웃들」 밝은 밤의 이웃들 정다연 오늘은 언덕 위에 눕혀진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된 기분 다 지켜본 기분 이웃한 인간이 이웃해 있는 다른 인간보다 높게, 더 높게 석상을 세우려다 서롤 죽이고 죽였다는 얘기 석상보다 더 거대하게 시체와 시체로 탑을 쌓았단 얘기 섬 전체가 불탔다는 얘기 이곳은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아 이곳은 더는 새가 날지 않아 태풍이 부드럽게 새 한 마릴 납치해 이끼 낀 석상 위에 산 채로 보내주는 일도 없어 인간이 멸종마저도 멸종시켰기 때문에 또다시 절벽은 절벽이지 둥지가 되진 않아 종려나무는 종려나무가 되기를 멈추었어 씨앗은 씨앗이길 포기했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씨앗이 씨앗이기를 감수하고 종려나무가 종려나무 숲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기까지 오늘은 이목구비가 뻥뻥 뚫린 언덕이 된 기분 .. 2019. 6. 28.
정다연「녹색광선」 녹색광선 정다연 당신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폭설이 내리는 밤 우리는 침대로 빨려 들어갑니다 당신과 마주 본 적 없는 내게 입 맞추어 입술을 녹여주세요 펄 속에 가라앉은 케르에르비 폐선처럼 온몸으로 당신의 진동을 느낍니다 벗겨주세요 만져주세요 캔버스 위 물감을 붓질하듯 제멋대로인 이목구비는 전부 지우고 상처 낼 수 없는 당신의 피로 나를 칠해주세요 한데 뒤엉키고 섞여 새로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 정다연 서울 출생. 한신대 문창과 재학 중. 그 마음 녹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이 이목구비 전부 지워져 뒤엉키고 섞여 새롭게 태어나지도 못한 옛 일들이 가슴 아픕니다.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내놓.. 2015.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