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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전쟁과 사랑2

고미카와 준페이 《인간의 조건》 고미카와 준페이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 유창위 옮김, 글사랑 1993 언제까지 걸어도 끝이 없다. 둘이서 걷는 길이란 그런 법이다.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긴요한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야기하고 싶으면서도 피하고 있다. 초저녁 어둠이 밀려오는 가운데 솜 같은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춥지는 않았다. 만주에서는 이런 눈은 흔하지 않다. 흔히 모래알처럼 사락사락하며 바람에 날려 살갗을 자극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볍고 부드럽게 감싸는 것만 같았다. 거리 모퉁이에서 두 사람은 발길을 멈추었다. 인적은 드물었다. 창턱에 눈이 쌓이기 시작한 창문마다 불빛이 따뜻하게 새어나오고 여기서부터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냥 이대로 갈까요?" 미치코(美千子)가 생각과는 반대되는 말.. 2016. 7. 8.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로시마 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로시마 내 사랑》 이용주 옮김, 동문선 2005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입니다. 시놉시스(synopsis 영화의 개요, 의도))에서 이 영화의 성격이 될 만한 부분을 골랐습니다. 우연히 만난 커플의 모습은 영화가 시작될 때 보이지 않는다. 여자도 남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 대신에 머리와 허리 부분이 잘린 듯한 사랑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차례차례 잿더미와 이슬 방울, 원자폭탄의 분진으로 덮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사가 끝난 후의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 같은 육체가 움직이는 장면이 보인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코, 순전히 미국의 입장에서 그것도 1945년을 고스란히 상기하며 설명한.. 2011.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