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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2》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케말은 영화인 페리둔의 아내가 되어버린 유부녀 퓌순을 그리워하고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일일이 설명한다. 두려움, 초조함, 고통, 번민, 고뇌, 환희, 상심, 분노, 반성, 후회, 다짐, 상심, 슬픔, 희망, 기대…… 사랑에 빠져서 헤어날 길 없는 마음의 변화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려 8년간! 일주일에 네 번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하고 통금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그 집을 나선다. 정확히 칠 년하고도 열 달간, 퓌순을 만나러 저녁 식사 시간에 추쿠르주마로 갔다. 처음 간 것은 네시베 고모가 “저녁때 와요!”라고 말한 지 십일일 후인 1976년 10월 23일 토요일이고, 퓌순과 나와 네시베 고모가 추쿠르주마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이 1984년 ..
2020. 7. 8.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 1》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0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1975년 5월 26일 월요일, 3시 15분경의 한 순간은, 범죄나 죄악, 형벌, 후회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세상이 중력과 시간의 규칙에서 해방된 것만 같았다. 더위와 사랑의 행위로 땀에 흠뻑 젖은 퓌순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천천히 그..
2020. 7. 7.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Ⅲ 여기와 다른 곳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춘천이나 강릉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전주나 여수도 좋고 통영, 진주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유는, 막연합니다. 춘천, 강릉, 전주, 여수, 통영, 진주....... 우선 지명부터 좋은 곳들이지만 그런 곳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미지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아서 단 한 가지도 “이것!”이라고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는 이스탄불이 아닌 곳, 유럽 혹은 서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무언가 ‘부족한 삶’일 것이라고 예감했었고, 이 예감의 일부분은 자신은 이스탄불, 그리고 터키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중심부 바깥, 변방에서 산다는 생각, 느낌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학에서의 근본적인 명제도 자신이 “중심부에..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