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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부부싸움2

김기택 「벽 3」 1989년 봄,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오전 내내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담임하고 있었고 그해 겨울 서울로 직장을 옮겨 교육행정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지만 그 봄에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었다. 교회 사찰집사님 아들과 그 교회 목사님 아들이 함께 우리 반이 되었다. 목사님 아들은 수더분하고 정직하고 의젓하고 영리해서 저절로 사랑스러웠고, 집사님 아들은 기가 죽을까 봐 스킨십도 자주 하고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했더니 누가 보거나 말거나 걸핏하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렇지만 자주 풀이 죽고 말이 없어서 그럴 때마다 까닭을 물으면 엄마 아빠가 밤새 싸워서 아침도 못 먹고 왔다고 했다. 어느 날, 또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고함을 질러버렸다. "네 엄마 아빠 당장 학교로 오라고 해.. 2024. 3. 13.
한탄 혹은 탄식 웃고 말면 그만이고 '저러는구나' 하면 섭섭할 일 없긴 하지만 아내로부터 듣는 원망은 끝이 없다. 그중 한 가지는 뭘 그리 중얼거리느냐는 지적이다. 이젠 그게 못이 박혀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도 몰래 중얼거려 놓고는 바로 후회를 하곤 하니까 반성조차 하지 않던 때에 비하면 그나마 발전한 건 분명하다. '발전'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이지만 사실은 '그래, 중얼거리는 것도 버릇이지. 좀 점잖게 살자' 다짐한 것이 여러 번이어서 그럴 때마다 '오늘 이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없으리라!' 결심하면서 '그러니까 오늘이 이 결심의 출발선이다!' 하고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나도 몰래 그렇게 한탄(혹은 탄식)하고는 또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그 순간을 '출발선'으로 삼은 것도 수십 차례였으니 나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 2023.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