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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남녀3

수컷 기질 암컷 기질(데즈먼드 모리스 흉내내기) 1 저기쯤 아직 조금밖에 삭지 않은1 남녀 한 쌍이 보입니다. 암컷은 수컷의 팔짱을 끼었고 둘은 보조를 맞추어 걸어오고 있습니다. 암컷은 계속 뭔가를 이야기하고 수컷은 분명 가장(假裝)한 과묵으로 듣기만 합니다. 나를 보고도 비켜 걸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고, 그 상황을 조금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2 그것들이 마침내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컷은 줄곧 내 눈길을 살폈습니다. 내가 제 암컷을 훔쳐보지나 않는지, 제 암컷이 예쁘고 몸매도 죽여준다는 걸 확인하지나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눈길은 결코 순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란히 걷는 상황에서 그 수컷이 제 암컷의 눈길까지 살필 수는 없으므로 마주보는 내 눈길을 확인하는 것만이 가능한 방어가 될 것이었습니다.. 2018. 10. 13.
베로니크 올미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베로니크 올미 《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LA PLUIE NE CHANGE RIEN AU DESIR 최정수 옮김 Human & Books 2006 1 5년 전에 헤어진 부부가 비 내리는 오후, 생 쉴피스 광장에서 다시 만나 뤽상부르 공원에서 키스를 나누고 뤽상부르 호텔에 들어가 집요하고 쓸쓸한 정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2 여자는 극심하게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전화를 했고 여자가 만나자고 했고 남자가 수락했습니다. 여자는 "울지 않겠다고, 그녀 안에서 굴종하려 하는 모든 것에, 세상을 포기하고 혼란에 몰아넣으려 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그것들을 제지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남자가 모르고 그녀에게 안겨다 준 놀라움과 분노 때문에 이 남자 앞에서 울부짖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112) .. 2018. 5. 27.
20억 년! 약 30억 년 전 단세포 생물이 세포 분열 후 두 개의 독립된 세포로 되지 못하고 그대로 붙어 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돌연변이 때문이었으리라. 이것이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모듬살이를 하는 일종의 생활 공동체인 셈이다. 이 공동체는 한때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부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은 100조 개 가량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람 한 명 한 명은 수많은 생활 공동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군집인 셈이다. 성性은 대략 20억 년 전부터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무작위적 돌연변이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유전 설계도의 글자를 한 글자씩 바꾸어 돌연.. 2018.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