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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나의 봄2

유미희 「강」 언 강이 녹는다 이쪽 산에 사는 고라니가 저쪽 산에 사는 멧토끼가 겨우내 건너던 얼음 다리 봄볕이 철거작업 중이다 천천히 지름길이 사라진다. 세상에 봄이 오는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동시작가 작품 중에는 아이들 흉내를 낸 것들이 있습니다. 장난 같고 심지어 같잖기도 합니다. 괜히 짜증도 나고, 이러니까 성인들은 물론 아이들로부터도 외면받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남의 일이니까 그냥 놔두면 되겠지만 혹 좋은 작품이 없을까 싶어서 또 살피게 되는데 그러다가 작가 작품다운 작품을 발견하면 '봐!' 하게 됩니다. 유미희는 어떤 작가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를 주로 쓰는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설목의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내가 본 동시」에 나무늘보라는 분이 실어놓은 이 작품을 봤습니다. 올봄.. 2023. 5. 2.
「봄요일, 차빛귀룽나무」 봄曜日, 차빛귀룽나무 박수현 그 물가에는 차빛귀룽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햇귀를 끌어당겨 푸른 머리핀처럼 꽂고 심심해지면 고요 밖에서 한눈팔 듯이 제 몸을 비춰보기도 한다네 그러고 나면 어찌 눈치채고 빈 데마다 쓸데없는 구름 그늘끼리 몇 평씩 떠 흐르네 낮결 내내 부젓가락처럼 아궁이를 뒤지던 부레옥잠도 어리연도 마냥 엎질러져 정강이째 찧으며 물살을 나르네 한나절 봄빛을 덖어낸 차빛귀룽나무 조붓하고 어린 나비잠을 스치며 희디흰 산그늘 한 마리 드문드문 허기져서 느린 봄날을 건너네 ―――――――――――――――――――――――――――――― 박수현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2003년 『시안』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빵』 『복사뼈를 만지다』 등. 『현대문학』 2016년 5월호(172~173)에서 이 시를 보고.. 2016.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