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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깁스2

겨우 손목뼈에 서너 줄 금이 갔다는데 지난 2월 말에 나는 이런 글을 써놓았었다. * 겨우 손목뼈에 서너 줄 금이 갔다는데 겨우 그 정도였는데 내 생활은 변했다. 운전을 못한다.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돌발상황이 일어날까 봐 엄두가 안 난다. 식사를 어린애처럼 한다. 포크로 하고, 왼손을 하고, 오른손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음식물을 찢거나 자를 수가 없다. 이것쯤이야 싶던 칼질도 왼손으로 하니까 차라리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양식 먹을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스파게티는 좋다. 왼손으로라도 돌돌 말면 된다. 워드를 못한다. 손목이 비틀어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신호가 오니까 '독수리타법'을 쓴다. 글씨 쓰기도 거의 술 취한 사람 수준이다. 왼손으로 해놓은 어제의 메모를 오늘 알아볼 수가 없어서 화딱지가 난다. 이런 바보! 왼손으로 .. 2023. 4. 3.
내게 옷을 입혀준 여인 경황 중에 깁스를 하고 대기석으로 나왔다. 성탄절을 앞둔, 눈이 많이 내린 이튿날이었다. '자,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일단 집에 가서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하겠지?' 주의사항을 듣고 계산도 했으니까 겉옷만 입으면 귀가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무슨 수로 입지?' 그것부터 난제였다. 한 가지 한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한동안, 어쩌면 무한정으로 그게 줄줄이 이어진다는 건 계산하지 못했다. 우선 2kg짜리 거추장스러운 걸 팔에 붙여놓아서 겉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미안해서 아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한 것부터 후회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이 일어서서 말없이 겉옷을 받았다. 젊었던 날들의 내 고운 아내처럼 세상이 넓고 복잡한 걸 몰랐던 날들의 누나처럼 한 번만 만나.. 2023.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