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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기택2

김기택 「벽 3」 1989년 봄,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오전 내내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담임하고 있었고 그해 겨울 서울로 직장을 옮겨 교육행정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지만 그 봄에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었다. 교회 사찰집사님 아들과 그 교회 목사님 아들이 함께 우리 반이 되었다. 목사님 아들은 수더분하고 정직하고 의젓하고 영리해서 저절로 사랑스러웠고, 집사님 아들은 기가 죽을까 봐 스킨십도 자주 하고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했더니 누가 보거나 말거나 걸핏하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렇지만 자주 풀이 죽고 말이 없어서 그럴 때마다 까닭을 물으면 엄마 아빠가 밤새 싸워서 아침도 못 먹고 왔다고 했다. 어느 날, 또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고함을 질러버렸다. "네 엄마 아빠 당장 학교로 오라고 해.. 2024. 3. 13.
김기택 「대머리」 대머리 김기택 당연히 대머리 아저씨 머리에 있어야 할 대머리가 어느 날, 내 거울에 와 있는 것을 본다. 죽어도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발음하는 주둥이가 달린 대머리 얼굴을 쳐다본다. 암처럼 비행기 사고처럼 당연히 남의 일이어야 할 대머리가 내 목 위에 뻔뻔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본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참 많았겠구나. ―――――――――――――――――――――――――――――― 김기택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신발장 거울에 비친 머리 모습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수리 머.. 2018.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