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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 남자의 가방2

안규철의 사물에 관한 이야기 《그 남자의 가방》 안규철의 사물에 관한 이야기 《그 남자의 가방》 현대문학 2012 아이가 숟가락질을 다 배우고 나면 학교로 보내진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도 숟가락질의 다른 방법들이다. 연필을 쥐고 남들과 같은 모양으로 글씨를 쓰는 방법과 손가락을 꼽아 셈을 하는 방법, 거기에 따르는 금기와 규범에 관한 것이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집요한 훈련이 반복되는가? 숙제와 시험과 칭찬과 회유, 매질과 모욕, 성적표와 경쟁, 학교의 이 모든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손을 미리 정해진 규격대로 길들이는 데 바쳐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혹사당하면서 손을 길들인 대가로, 우리는 비로소 손에서 입 사이에 그만큼의 여백을 얻을 수 있다. 쓸모있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34) 나는 지금 무엇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까? 조각가 안규.. 2023. 4. 6.
"재미없는 인생"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남들도 그렇다고 말하고 나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할 줄 아는 잡기雜技가 없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바둑이나 장기는 물론이고 그 흔한 화투나 카도놀이도 배우지 못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며 낚시나 테니스 같이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취미에 빠져본 적이 없고, 한 가지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 취미도 없다. 취미를 묻는 신상명세서의 빈칸 앞에서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써넣을 말이 없다. 휴일을 위해 훌륭한 취미들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과연 취미라고 불러도 되는지, 그랬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서점에 들어가서 책 구경을 하고 있으면 며칠이라도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2022.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