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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개망초꽃3

이 편안한 꽃밭 주인양반은 의사 선생님이어서 너무 바쁘다.지난봄 어느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부부가 와서 잡초를 대충이라도 제거하고 돌아갔었는데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자욱한 꽃밭이 되고 말았다. 이 꽃밭 사진을 본 시인은 참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전에 진달래였던가, 내가 무슨 봄꽃을 이야기했을 때는 '점령(占領)'이라는 말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또 편안해 보인다고 한 것이다. 그 시인은 내 모든 열매를 직박구리가 거의 다 따먹는다며 미워하자 미운 건 당신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내가 다시 뭐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그의 말을 부정하는 건 아무래도 완벽하게 논리적이진 않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그가 이 사진을 보고 참 편안해 보인다고 한 걸 그 의사 선생님께 일러바칠 수도 있다.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 2024. 7. 1.
개망초 향기 "요즘도 많이 바쁘죠?" 그렇게 물으면 되겠지, 생각하며 며칠을 지냈다. 누구에게든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더니 이젠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전화가 왔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면 수다가 된다는 걸 염두에 두며 대체로 묻는 것에만 대답했다. 너무 서둘러 끊었나? 섭섭해할까 싶어서 개망초 사진을 보내주었다. 답이 없다. ... 바쁘긴 바쁜가 보다. 밤 9시 24분, 잊고 있었는데 답이 왔다. 다섯 시간 만이었다. 저쪽 : 꿀 냄새만 나는 게 아닌걸요~ 개 망할 풀 왜 이리 이뻐요!? 나 : 밭 임자가 의사인데 많이 바쁘겠지요, 지난해 심은 대추나무가 다 죽어 그 혼이 개망초꽃으로 피어나서 그래요 ^^ 저쪽 : 선생님, 눈물 나려고 해요 ㅠㅠ 나 : 아! 이런!!! .. 2023. 7. 4.
나는 아무래도 개망초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이 개망초 밭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하면서 아무래도 나는 개망초과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꽃을 좋아합니까?" 미팅 같은 건 내겐 이제 혹 저승에 가서나 있을지 모르지만 가령 그렇게 물을 때 뭐라고 답하면 좋겠습니까? "전 장미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답하면 돋보이거나 어울리거나 그 외모조차 장미 같아 보이거나 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그게 바로 파란편지라니, 우습지 않겠습니까? 나 참 같잖아서... "저는 수선화를 좋아합니다" "저는 히야신스를 좋아합니다" "저는 붓꽃 마니아입니다" "저는 고흐처럼 해바라기 광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국화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자귀나무 꽃을 좋아합니다" "저는 저 여성스러운 수국을 좋아합니다" ...... 사실은 그동안 꽃을 .. 2021.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