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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는 길2

가을엽서 Ⅸ - 가는 길 저 쪽 창문으로 은행나무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깜짝 놀라 바라보았더니 그 노란빛이 초조합니다. 올해의 첫눈이 온다고, 벌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고, 마음보다는 이른 소식들이 들려와서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다른 출구가 없다는 것이 더 쓸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정말 이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보면 화려하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정말이지 그걸 알 수가 없었습니다. 멍청하게 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못마땅할 것입니다. 다른 출구가 없다는 것이 마음 편하기도 합니다. 순순히 내려가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마음만이라도 따뜻하게 가지고 있겠습니다. 딴 마음이 들면 얼른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럼. 2012. 11. 16.
「파도는」 파도는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로 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의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최선이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고고하게 부르짖는 외침이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한마디 말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그 결단의 순간이 좋은 것이다. 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그 행적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생이 좋은 것이다. ―오세영(1942~ ) 유치환의 「파도」는 애절합니다. 그 시를 그대로 옮기고 싶은 간절함을 .. 2012.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