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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다른 사람 블로그 찾아다니기

by 답설재 2025. 5. 28.

 

 

 

올해 들어 다른 사람 블로그를 찾아다니는 일이 번거롭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고지식하다.

누가 와서 댓글을 달아주면 넘어가버린다. 그 사람이 새 글을 올릴 때마다 경탄의 표시를 해줘야 한다.

올해 들어 그게 번거롭게 느껴져서 검색해 봤더니 상대방은 그렇게 다녀간 뒤로는 '아예' 오지도 않는데 나는 '아주' 목을 매어놓고 찾아가고 있었다.

 

내가 가서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달았을 때 상대방도 즉시 내게 와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주는 건 뭐랄까 너무 실리적·현실적인 처사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런 사람은 차라리 체면이 있는 사람, 고마운 사람이었다.

대부분 그렇게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끼만 던져 놓고 물면 그다음부터는 나는 부지런히 달려가고 상대방은 아예 오지 않거나 잘해봤자 내가 열 번 스무 번 찾아가면 상대방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쯤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배울 점이 있는 블로그들 아닌가?

답한다. 아니다.

 

이제 나는 그렇게 하는 게 힘겹다.

나는 청춘도 오륙십 대도 칠십 대도 아니다. 퇴임한 지 한참 되었고 힘이 빠져서 활동량이 점점 줄어든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다 해놓고도 시간이 남아서 책도 보고 좋은 세상의 좋은 블로그들을 찾아다니고 했는데 이젠 꼭 해야 할 일, 시키는 일 하는 데도 허덕이게 된다.

본래 약질이었다. 그래도 활동은 남들보다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기고 오만이었다. 힘이란 역시 생긴대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속지 말자는 것이다. 아니 미끼를 물지 말자는 것이다.

남의 블로그 찾아다니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죽을 땐 죽더라도 찾아가야 할 블로그가 없는 건 아니다.

 

오래된 블친이 있다.

내 글이 길고 재미없고 그런데도(어떤 이는 앞부분 조금 읽고 댓글을 써서 내가 답글 쓰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글 취지와 전혀 다른 댓글을 달고 가는 경우다) 끝까지 다 읽고 더없이 고맙고 반가운 댓글을 써준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걸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생각한 것을 짐작해 내고, 내 건강을 염려해 준다. 내가 넘어지면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해 준다. 내가 한 일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준다. 전업주부지만 교육에 관해서도 놀라울 만큼 깊다(교육의 목적은 앎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감성에 관한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을 스승처럼 생각해 주는 이도 있다.

에둘러 이야기해도 사실은 꾸중인데 그걸 고깝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고 여전히 살갑게 다가온다. 내가 아무리 삭막한 인간이라 해도 그런 이까지 내칠 수는 없다.

 

특목고에 다니는 블친도 있다.

그 친구는 보나 마나 바쁘다. 2학년이고 영어, 일어, 중국어를 잘한다. 책도 많이 읽고 애니메이션 영화도 좋아한다. 엄마 아빠와 잘 지낸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그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데 푹 빠진다. 방학 때는 계획한 일만 해도 무수히 많을 텐데 내 블로그의 긴 글들을 읽어준다.

특별한 것은, 평소에도 주말에는 다녀간 흔적을 남겨서 '보물, 내 친구...'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 친구가 세상을 날아다니는 날을 기다린다.

 

내 글을 읽는 것이 힘들 것 같은데도 애써 읽고 간략한 한두 마디를 써주던 이가 있다.

그이의 블로그 글을 보면 비문(非文)이 흔하고 맞춤법도 엉성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글들이 사랑스럽고 놀라워서 꼭꼭 찾아가 읽었다. 이분은 사는 것 같이 사는구나 감탄하곤 했다.

나는 그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무슨 섭섭한 일이 있었겠지? 아예 블로그 문을 닫아걸고 말았다.

나는 '즐겨찾기'에 그이의 블로그를 그대로 두고 혹이나 싶어서 클릭해보곤 한다.

 

세상에는 예쁘장한 글을 쓰는 이가 있다. 왜 없겠나?

그렇지만 세상에 나와 있는 책들을 보면 그런 글을 더 자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을 두고 블로그의 글들을 애써 찾아다녀야 할 만큼 내가 가난하진 않다.

무엇보다 내가 자신의 블로그에 홀딱 빠진 줄 아는 '공주과 블로그'를 더 이상 극진히 모시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제 그만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