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진1 한여진 「느닷없이 나타나는 밤에 대해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밤에 대해서 한여진 이른 아침 그는 시장에서 눈을 떴다 누군가가 내다 팔기 위해 장롱에서 꺼내온 놋그릇이 그의 오랜 집이었다 그는 커다란 이빨을 쓰다듬으며 택시를 탔다 도깨비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도깨비 손님은. 요새는 통 나올 일이 없어서요. 하긴 그래요. 밖은 좋지 않은 것들투성이죠 택시는 한낮의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택시 기사는 신중한 동작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오래된 팝송을 틀었다 그러고는 예전에 만난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손이 기막히게 빠른 야바위꾼이었는데 세 개의 엎어진 컵을 이리저리 눈 깜짝할 새 없이 옮기다 보면 꼭 하나의 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그럴 땐 손가락을 들어 그 어떤 것을 가리켜도 컵이 열리는 순간 번쩍하고 깊은 밤이 찾아와서 .. 2023. 4.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