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정1 한세정 「해변의 엽서」 해변의 엽서 한세정 여보,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올까 한여름으로 치닫는 해안 철길을 달리는 기차에 앉아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차창 너머 튜브를 타고 깔깔거리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고요한 시간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알몸의 아이들은 손을 흔들어대고 이국의 파도가 해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어 언젠가는 우리도 모래의 얼굴처럼 허물어지겠지 눈 깜짝할 사이 얼굴선이 흘러내리고 침침해진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더듬거리다 스르륵 두 눈을 감겨주겠지 여보, 그때쯤 우린 얼굴을 할퀴고 달아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밀 수 있을까 시퍼렇게 질려 뒷걸음질 쳤던 가로수의 상기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아내의 주름진 입가를 털어주는 한쪽 다리가 없.. 2024. 1.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