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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절망2

어디까지가 나인가? "미흡함, 거북함, 수치감, 아픔, 고통, 절망스런 그 어떤 기억이라도 지금에 뒤돌아보니 리얼함이 묻어 있는 살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이달엔가 지난달엔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는 김채원 작가의 글에서 옮겨 써놓은 문장이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러면 그런 미흡함, 거북함, 수치감, 아픔, 고통, 절망들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인가? 살았다는 증표이므로. 그렇지만 나는 나의 그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아, 답설재에게 그런 일이!.....' 할 것이 어렵게 다가온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는데도 그렇다. 나 자신에게부터 그게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덜 된 인간이어서'일까? 2023. 4. 2.
"라스티냐크, 끝까지 갈게! 몰락한 고리오라도 괜찮아..." 문득 돌아보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야기한 라스티냐크가 생각납니다. 이게 누구지 싶어서 고골리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라스티냐크처럼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골리 영감?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 알베르 까뮈로부터 * 분명, 사람들이 유럽의 대도시 속으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저 타인들 한가운데에서의 고독이다. 최소한, 인생에 어떤 목적을 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교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버릴 수 있다. 호텔 방과 일르 생 루이의 오래된 돌들 사이를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정신들이 누그러졌는가! 거기서 고독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그.. 2021.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