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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기철2

이기철 「꽃나무 아래 책보를 깔아주었다」 꽃나무 아래 책보를 깔아주었다 이기철 겨울 창고 문고리를 따면 가득한 봄이 쏟아져 나온다 냉이꽃 주소 한 장 들고 꽃동네를 찾아간다 오전의 뺨에 연지를 찍어주고 싶던 시간과 꿈꾸는 딸기에게 동요를 불러주고 싶던 날들을 데리고 간다 단추처럼 만지던 모음의 헌사들과 지나고 나면 허언이 되고 말 낙화와의 언약도 담아서 간다 그에게 치마 한 벌 바느질해 입히고 홀로 황홀했던 봄날과 홈질도 박음질도 서툰 내 반짇고리에 날아와 담기는 꽃잎의 말도 보듬고 간다 저 분홍들에게 눈 맞추는 일밖엔, 체온 밴 내복을 빨아 너는 일밖엔 내가 할 일은 없어, 하루만 더 머물다 가라는 말밖엔 전할 안부는 없어 다시 올 삼백예순 날 기다려 나는 피부가 하얀 꽃나무 아래 헌사 대신 꺠끗한 책보를 깔아주었다 ――――――――――――――.. 2020. 4. 9.
이기철 「대필 代筆」 대 필 代筆 이기철 마운령 넘다가 물집 잡힌 발바닥 다스리며 천수참千水站에 닿았다지요 양관 열하는 양 칠월 초순이 복더위라 노간주 그늘에서 땀을 말렸다 하셨군요 또 청석령靑石嶺 넘어 관우 묘에 읍하고 바리때 치는 도사를 에둘러 역졸들에게 참외를 샀다 쓰셨네요 등갓 쓴 중속환이들과 눈 잠시 맞추고 또 팔십 리, 낭자산狼子山에서 잤군요 우대령雨大嶺은 큰 비 고개니 빗소리 도와 코를 곯아도 나무랄 이 없고 유월 신미 날 비 맞으며 오리 정수리 빛 강鴨綠江을 건너 불함산 넘어 길 나선 여객이 내쳐 보름 완보니 지친 몸이 그만 가자 해도 마음이 당겨 또 백탑白塔으로 옮겼군요 근력 소진, 칠정의 말단 배냇아이 마음 하나 꺼내 크게 울었다 하셨으니 몸의 미편을 미루어 짐작합니다 영수사映水寺 거쳐 십리하十里河에 왔으니.. 2011.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