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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3

책을 낸다는 것 책을 낸다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요? 자비출판(자신의 돈으로 책을 내어 지인들에게 뿌리는) 경우에는 아예 자신의 돈으로 그 책을 미리 다 구입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럴 일이 없지만 저작권료를 받기로 하고 출판한 경우, 책이 팔리지 않으면 본인도 비참하고 출판사에서도 실망스러워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책은 팔리지 않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은 출판을 거듭하면서 실망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매번 실패했음에도 '이번에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기대는 마치 카드놀이와 흡사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절'(원고료만 받고 출판사가 마음대로 하는 경우)로 넘긴 원고가 대박이 나서 출판사가 15년 간 떼돈을 벌었고, '이런 .. 2022. 4. 22.
내 눈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2021. 9. 22.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아모스 오즈 장편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최창모 옮김, 문학동네 2015 서른일곱인가에 자살한 어머니가 책에 대해 말했단다. 한번은 내가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이었을 때, 우리는 약국인지 어린이 신발 가게인지로 가는 마크셰르 회사의 버스 맨 끝 의자에 앉았는데 어머니는 내게, 사람만큼이나 책도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반면, 차이점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상대로부터 더 이상 어떤 이점이나 쾌락이나 이익이나 아니면 최소한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없는 때가 오면 상대를 버리는 반면, 책은 절대로 상대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연히 너는 때때로, 아마도 몇 년 동안, 혹은 심지어 영원히, 책을 저버리기도 할 거라고. 그렇지만 네가 책을 배신해도 책은 절대로 네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책은 침묵하며.. 2021.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