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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사과2

세상의 불합리한 일들 "편간회"라는 이름의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그 모임의 열 명 중 내 나이가 제일 적습니다. 그러니까 싫든 좋든 잘났든 못났든 '조만간(早晩間)' 떠날 사람들입니다. 한참 식사를 하는 중에 두 명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어서 황당하다 싶었습니다. 다 선배들이고 해서 어색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참만에 서로 사과했습니다. 친구 간에 저렇게 정중할 수 있나 싶은 사과였습니다. 일들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물론이고 거리에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정의(正義)'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져서 힘이 없는 처지에서는 분통을 터뜨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고, 점점 성질머리만 나빠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차라리 잘된 일일 것입니다.. 2019. 1. 20.
나희덕 「비오는 날에」 비오는 날에 나희덕 (1966~ )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이 비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시입니다. 비오는 날에. 내 튼튼한 우산의 안락함만으로 지낸 것.. 2010.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