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박형권2

박형권 「탬버린만 잘 쳐도」 탬버린만 잘 쳐도 박형권 옆방 젊은 여자하고는 이사 첫날부터 찌그려졌다 이삿짐 다 옮겨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보니 출입문이 두 개 있는데 어느 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문이나 열긴 열었는데 꽃 같은 장롱에 복어 주둥이 같은 살림살이들 아, 이 문이 아니었다 얼른 닫고 옆문을 여니 마누라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딸 같은 시집詩集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한시름 놓는데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야, 너 뭐하는 놈이야? 여자들만 사는 집을 왜 들여다봐?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 인연은 일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과 여자와 여자의 어린 딸이 사는 것 같은데 모두 가을바람 앞의 코스모스 같았다 이슬만 먹고 사는지 그 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째 옆방에서 탬버린 소리가 .. 2014. 10. 4.
박형권 「털 난 꼬막」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 열어준 사람은 오촌 당숙이시고끝까지 뒤를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큰아버지시고무엇을 씹을 때부터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짚으로 큰아버지 주먹만 .. 2010.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