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직장에 다니지도 않는 주제에 코로나 이후로는 매번 토요일 점심때 모임을 가졌다.
내게는 토요일이 풀 뽑는 날이었다.
'하필 대중교통 이용하기도 어렵고 시내 어느 곳이든 다 복잡한 토요일에 모이나!' 싶어도 아뭇소리 않다가 지난해 가을에는 모임을 주선하는 이도 아닌 L에게 한소리 해버렸다. "몇 번 안 나갔다고 이젠 모임 통지도 안 하나! 자네들 맘대로 하나!"
그랬더니 "미안하다, 미안하다"면서 "자네가 카톡을 안 해서 연락이 빠진 것 같다. 다음번 모임부터는 내가 맡아서 꼭 연락할게" 했는데 어제 그는 나오지도 않았다.
누군가 L은 어디가 불편하다더라고 했다. 어지럽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치매끼가 있다고도 했다.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잃어서 그때부터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노모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다.
P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고, 내게 전화해서 내가 나간다고 하면 그도 나왔는데 요즘은 소식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 삼사 년 됐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하더니 차츰차츰 기가 죽어갔고 지난해 연말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는 두 아들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직장도 없다. 큰아들은 내가 잡아준 직장에서 버티지 못해 그만두었는데 그 나이에 집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 작은아들은 미국 유학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 경비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일찌감치 사표 내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을 한 SI는 낙천적이고 얼굴도 동안이었다. 2000년대 초에 내게 자꾸 어디가 아프다고 해서 아프긴 뭐가 아프냐, 다 그렇다고 했는데 그런 소리를 매번 하더니 요즘은 내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SU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협심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질 때 그도 그랬지만, 희한하게 시위하는 데는 잘 나가고 그런다더니 요즘은 증세가 심해져서 모임에 나오기가 어렵다고 하더란다.
그렇게 해서 초창기에 나와 함께 셋이서 만나던 C1, C2를 포함해서 여섯이 점심을 먹었다.
마포 사는 J는 일 년에 네 번씩이나 모인 그 식당을 찾아오지 못해 G가 전화로 다시 전철역으로 들어가라, 그런 다음 5번 출구로 나오라고 해서 붙잡아 왔다.
나는 처음 가보는 식당이지만 주인에게 전화 한 번 해서 찾아간 집이었는데 그는 한두 번 찾아간 것도 아닌 그 단골집을 혼자 힘으로는 못 찾은 것이다.
C1이 우리가 졸업한 때의 인원은 280명이었는데 그중 40명이 죽었다고 하니까 누군가 40% 일 것이라고 했다.
모임을 주관하는 K에게 잊기 전에 회비를 내겠다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남은 돈이 좀 있으니 잠정적으로 그 돈을 쓰고 필요하면 그때부터 받겠다고 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모임이 다 있나. 아직 80대 초반들인 주제에...
오전에 눈이 덜 녹은 길을 걸어 나가 전철을 타고 모임 장소를 찾아갈 때는 날씨는 쌀쌀해도 소풍날 같았다.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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