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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쓸쓸한 동기회

by 답설재 2026. 1. 25.

 

 

 

다들 직장에 다니지도 않는 주제에 코로나 이후로는 매번 토요일 점심때 모임을 가졌다.

내게는 토요일이 풀 뽑는 날이었다.

'하필 대중교통 이용하기도 어렵고 시내 어느 곳이든 다 복잡한 토요일에 모이나!' 싶어도 아뭇소리 않다가 지난해 가을에는 모임을 주선하는 이도 아닌 L에게 한소리 해버렸다. "몇 번 안 나갔다고 이젠 모임 통지도 안 하나! 자네들 맘대로 하나!"

그랬더니 "미안하다, 미안하다"면서 "자네가 카톡을 안 해서 연락이 빠진 것 같다. 다음번 모임부터는 내가 맡아서 꼭 연락할게" 했는데 어제 그는 나오지도 않았다.

 

누군가 L은 어디가 불편하다더라고 했다. 어지럽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치매끼가 있다고도 했다.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잃어서 그때부터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노모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다.

 

P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고, 내게 전화해서 내가 나간다고 하면 그도 나왔는데 요즘은 소식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 삼사 년 됐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하더니 차츰차츰 기가 죽어갔고 지난해 연말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는 두 아들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직장도 없다. 큰아들은 내가 잡아준 직장에서 버티지 못해 그만두었는데 그 나이에 집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 작은아들은 미국 유학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 경비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일찌감치 사표 내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을 한 SI는 낙천적이고 얼굴도 동안이었다. 2000년대 초에 내게 자꾸 어디가 아프다고 해서 아프긴 뭐가 아프냐, 다 그렇다고 했는데 그런 소리를 매번 하더니 요즘은 내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SU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협심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질 때 그도 그랬지만, 희한하게 시위하는 데는 잘 나가고 그런다더니 요즘은 증세가 심해져서 모임에 나오기가 어렵다고 하더란다.

 

그렇게 해서 초창기에 나와 함께 셋이서 만나던 C1, C2를 포함해서 여섯이 점심을 먹었다.

 

마포 사는 J는 일 년에 네 번씩이나 모인 그 식당을 찾아오지 못해 G가 전화로 다시 전철역으로 들어가라, 그런 다음 5번 출구로 나오라고 해서 붙잡아 왔다.

나는 처음 가보는 식당이지만 주인에게 전화 한 번 해서 찾아간 집이었는데 그는 한두 번 찾아간 것도 아닌 그 단골집을 혼자 힘으로는 못 찾은 것이다.

 

C1이 우리가 졸업한 때의 인원은 280명이었는데 그중 40명이 죽었다고 하니까 누군가 40% 일 것이라고 했다.

모임을 주관하는 K에게 잊기 전에 회비를 내겠다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남은 돈이 좀 있으니 잠정적으로 그 돈을 쓰고 필요하면 그때부터 받겠다고 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모임이 다 있나. 아직 80대 초반들인 주제에...

 

오전에 눈이 덜 녹은 길을 걸어 나가 전철을 타고 모임 장소를 찾아갈 때는 날씨는 쌀쌀해도 소풍날 같았다.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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