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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새 물건을 구입하는 아내를 볼 때의 혼란 혹은 착각

by 답설재 2026. 1. 12.

 
 
 
저 집 딸들은 셋 다 이미 숙녀 같아서 저런 걸 탈 리가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놔둔다.

숙녀들의 부모는, 내 눈에는 아직 신혼부부 같고 그즈음의 젊은이들은 대개 너무 바빠서 저 탈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드나들며 바라보면 그냥 그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거기 잘 있을 뿐이다.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처분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저런 집 가족들은 다 젊다.
가족이 각자 다 분주해서 어떤 물건이 필요 없게 된 사실도 모른다.

그건 흉이 아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만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집 안이 너무 복잡해서 곧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게 되었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물건만 정리하면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 걱정할 건 없다.
우리(나와 내 아내)는 몇 차례 혹 미친 짓을 한 건 아닐까 싶고 그 빈자리들이 허전할 정도로 버렸다.
마음먹고 새로 장만해서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솜이불을 버릴 때는 정말 많이 망설였다. 아내가 도저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나서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아직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버릴 물건은 어디 연락하면 잔돈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해야지 싶어도 막상 때가 되면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도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건 돈 몇 푼 문제가 아닌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마음 중 나는 언제나 섭섭함이 더 컸다.
좋은 일보다 걱정스러운 일, 서러운 일, 미안한 일 같은 걸 겪으며 '앞날이 있다' '더 좋은 날이 있다'는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내려가는 길인 걸 알게 되어 돌이킬 수 없구나, 걷잡을 수 없게 됐구나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처자식 고생만 시킨 삶이어서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데 싶지만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갖고 살자고 다짐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미련 때문에 몇몇 물품은 보류하기도 한 반면, 새로 필요하게 된 것이 영 없지는 않다.

대부분 소소한 물건들이다.
그 소소한 물건을 새로 구입하려는 아내를 보면 신혼 때가 떠오르고, 잠깐 힘이 생기기도 한다. 무슨 희망 같은 걸 느낀다.
그렇지만 그 물건이 커다랗거나 반영구적이거나 값비싼 것이 아니고 자질구레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표현할 길 없는 서러움, 서글픔, 슬픔을 느낌다.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겠나?

아내가 소소한 물건을 구입할 때 나는 잠시 혼란을 느낀다. 아직 좀 남았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삶은 서러움, 서글픔, 슬픔을 향해 가는 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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