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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111

소규모 학교·소규모 학급 지난달 28일 오후에 후배 교장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교장은 참 다정한 사람이지만 내가 심장을 두 번이나 고친 줄은 모릅니다. 사실은 이 블로그에 오는 분 말고는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랑'을 하고 다닐 수도 없고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혹 심장 고쳤습니까?"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가 가까이 있고 아프다고 들어앉아 있기보다 한번 나가보자 싶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한 동행 학부모 연수'가 초대 이유였습니다. 그 학교가 작은 학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작은 학교인 줄은 몰랐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저 뒤에 계신 남성들은 누군가 싶어 학부모만 손 좀 들어보라고 했더니 앞쪽의 네 분인가 다섯 분의 여성만.. 2010. 11. 8.
박광수 『광수생각』 한강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와 울긋불긋 조금조금씩 달라지는 나뭇잎들이 가을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려줍니다. 선생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힘겹게 투병중이신 걸 알면서도 걱정을 덜어내려는 저의 이기심으로 늘 평안하시기를 기도한답니다. 유난히 비가 많아 한여름의 시끌벅적보다는 조금 우울했던 여름이 가고 맞이한 가을이라 그런지 시간의 지남이 무척 아쉽고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서점에 갔었어요. 이것저것 보다가 책 제목이 맘에 들어 샀습니다.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 씨의 글과 그림과 애틋한 사랑 詩가 담겨 있더군요. 읽다가 빙그레 웃고 조금 애틋하기도 하고… 이 가을 편하게 (이런 걸로 걱정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후략)… '광수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벼룩.. 2010. 11. 4.
외손자 선중이 Ⅷ -망신살 이야기- 지난 주에 학예회가 열렸답니다. 제 외손자는 무대를 내려오며 눈물을 쏟았답니다. 제 어미의 꽃다발도 받지 않았답니다. 모두들 컵 하나씩을 가지고 난타(亂打)를 했는데 옆의 아이가 건드려서 컵이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고, 그걸 주워든 제 외손자가 그 아이에게 무어라고 하고, 그러는 시간이 제 어미의 느낌으로는 10분은 되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 어미가 그 애에게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나 망신 좀 그만 시켜줘!" 그랬다고 하더랍니다. 마치고 교실로 돌아갔을 때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제 어미에게 전화해서 "지금 꽃다발을 받고 싶어요." 하더랍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물었더니 녀석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망신살이 뻗쳤죠." 웃기는 녀석이죠. 망신살이 .. 2010. 11. 3.
사지선다형(四肢選多型) 문항 Ⅱ 개그맨 한 명이 그룹 소녀시대 중 한 명의 소녀에게 능청스럽게 묻습니다. "소녀시대는 왜 인기가 높을까요?" "……(^^)" 인터뷰에 나선 그 소녀는 웃기만 합니다. '닭살'이지만 어떻게 나오는지 더 지켜보자는 거였겠죠. "그럼 다음 중 몇 번일까요? ①번 예쁘니까, ②번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 하니까, ③번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니까. 자, 몇 번일까요?" ④번은 없었습니다. "……(^^)" 소녀는 그래도 대답하지 않고 생글생글 미소만 짓고 있었고, 그 개그맨은 무어라고 이야기를 더 이어갔지만 나는 이미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지선다형은 이런 인터뷰에나 쓰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이제 그런 공부는 그만 하면 좋겠습니다. 아니, 학교에서도 하되 그 인터뷰처럼 .. 2010. 11. 1.
사지선다형(四肢選多型) 문항 페루에서는 선거를 할 때 다음 중 어떤 일을 금지하겠습니까? ① 도박을 하면 안 된다. ② 술을 마시면 안 된다. ③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④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 지난 23일(토) 오후, 라디오 토크쇼에서 들은 문제입니다. 페루는 요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친한 나라입니다. 답이야 뻔하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이 이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이처럼 가볍기만 하고,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이라면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사나 학교에서 하는 공부나 사지선다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고, 사실은 사지선다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정말 바늘구멍만큼 사소한 영역일 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어쩌면 사지선다형은 자녀나 조카, 손자나 손녀의 .. 2010. 10. 26.
이름붙이기 이름붙이기 Ⅰ 어느 전철역에서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은 작은 전시회를 보고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입니다. 무제(無題)…… 이런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이 작품에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해준 분의 따듯한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했고, 제가 담임했던 그 아이도 떠올렸습니다. 그도 이미 50대이니 오래 전입니다. 자주 싸우고 말썽을 피우는 그 아이의 도화지는, 무슨 심보였는지 물감을 덕지덕지 쳐발라서 온통 거무티티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라고 하니까 펴놓았지만, 그림은 무슨 그림……' 기억으로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각자가 그린 그림을 분단별로 칠판 앞에 세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 2010. 10. 25.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SK가 2010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느 신문은 한 면 가득하게 "용이 승천하는 사이… 사자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작은 제목들은 '김성근 감독 지독한 훈련… SK 준비된 우승'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꼼꼼한 정보 분석도 한몫' 등이었습니다.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노동'이라고 표현된 그 말의 개념을 '단순노동', 아무런 생각 없이 수없는 몸놀림만 되풀이해야 하는, 생각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 해도 지겨워서 못하겠다고 할 단순노동쯤으로 해석한다면. 기사 중에서 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1 SK는 역시 강했다. 플레이오프 혈전을 치르며 체력을 소진한 삼성은 .. 2010. 10. 20.
아무리 바꿔도 별 수 없었던 대입전형(2010.10.15) 아무리 바꿔도 별 수 없었던 대입전형 대입전형 방법이 또 바뀔 것 같다. 현행 상대평가 방식의 내신제도를 2014학년도부터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바뀌면 학부모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얘야, 넌 나와 달리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열심히 하기만 하면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된단다”. 그 장담은 당연히 부모나 교사로서의 신뢰를 담은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경험으로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대입제도 변천은 늘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고, 그때마다 당연한 듯 다시 새로운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정부는 더욱 심층적인 연구로 정교한 정책을 내놓으면서도 “또 바꾼다”는 비판만 받아왔다. .. 2010. 10. 19.
학교에 항의하기(만화감상) '학교에 항의하기'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은 오랜만에 교육을 소재로 한 만화가 눈에 띄여 이것 좀 보시라고 그랬습니다(조선일보 게재 만화).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나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이 세상에 만화가들처럼 낭만적(?!)인 사람이 많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합니다. 만화의 주제는 어떻습니까? 자녀를 큰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키기를 주저하는 학부모들도 있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키기를 주저하는 학부모들도 있다는 건 이미 소문 축에 들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 만화에서 저 아빠가 학교에 전화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로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이거나 그 친구가 아닐까,.. 2010. 9. 17.
독도의용수비대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입니다. 옛날과 딜리 교육부 직원들이 직접 책을 쓰지는 않고 연구기관 또는 대학 등에 위탁하여 편찬합니다. 국정교과서 뒤의 판권 페이지에는 연구진과 집필진, 심의진도 표시되고, 그 연구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도 들어가게 됩니다. 전에는 교육부 담당자가 심의진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집필진에도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담당자는 연구, 집필, 심의 등 모든 면을 다 책임지고 일 처리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회과 교과서 담당자로 일할 때는 형식적으로 제 이름을 넣은 것이 아니라 저도 상당 부분을 집필했습니다. 제6차 교육과정 때의 사회과 교과서는 한국교육개발원 사회과연구실에서 편찬했는데, 6학년 2학기 '세계의 여러 나라' 단원은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 2010. 9. 16.
외손자 선중이 Ⅶ-수행평가 0점- 무슨 수행평가가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려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빵점을 맞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시간까지 어떻게 참았을까요. 제가 가지고 간 준비물은 뒤에 앉은 아이에게 빌려주고, 자신은 짝꿍의 것을 함께 썼는데, 선생님께서 누구의 것인지 묻고는 0점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녀석은 선생님께 왜 그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 녀석의 준비물을 쓴 그 뒤의 아이는 왜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을까?' - 옆의 아이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학부모의 입장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입장이 아닙니다. 녀석의 외조모와 어미가 그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알게 됐으면 됐.. 2010. 9. 15.
아, 일본!-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얘기- 아, 일본!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얘기- 일본 내각회의는 지난 10일, 우리의 독도를 저희들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한 방위백서(防衛白書)라는 걸 승인하여 발표했답니다. 도대체 일본인들은 어떤 근거로 우리의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학자들이 설명하는 걸 읽어보면,1 일본은 독도가 무주지(無主地)였기 때문에 저희가 선점(先占)했으므로 국제법상 ‘무리 없는’ 저희들의 땅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 아닙니까? 사실은, 저들은 1904년 당시 국운(國運)을 걸었던 러일전쟁을 하면서 독도에 러시아 군함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를 설치하려고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비밀리에 영토 편입을 결정하고 그해 2월 22일, 시마네현 현보(縣報)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 201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