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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111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이세욱·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1 1 세상의 온갖 일들 중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을 자극했구나 싶은 383가지 이야기가 실린 '사전'입니다. 놀랍고 신기한 신화, 역사, 과학, 종교, 철학, 게임……. 이런 것들을 모른 채 살아간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전혀 없겠지만, '다음엔 뭐지?' 호기심, 궁금증이 읽는 속도를 재촉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었습니다. 사전(事典)을 소설 읽듯 그렇게 통독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몇 가지 되지 않고 대부분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들이어서 이 작가의 '손바닥(掌篇) 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는 이 383가지 항목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려고 작정했는데, 더구나 실제로 하루에 한 편을 .. 2018. 2. 6.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김 행 숙 신발장의 모든 구두를 꺼내 등잔처럼 강물에 띄우겠습니다 물에 젖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구두를 위해 슬피 울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그 곁에서 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기억의 국정화가 선고되었습니다 책들이 불타는 밤입니다 말들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긁어모은 낙엽처럼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밤, 뜨거운 악몽처럼 이것이 나의 밤이라면 저 멀리서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아침 햇빛이 내 눈을 찌르는 순간에 검은 보석같이 문맹자가 되겠습니다 사로잡히지 않는 눈빛이 되겠습니다 의무가 없어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나의 아침이라면 더 깊어지는 악몽처럼 구두가 물에 가라앉고 있습니.. 2017. 5. 11.
그 떡집 모처럼 만날 사람에게 들고 갈 만한 것을 생각하며 걸어가다가 그 떡집을 발견했습니다. 자주 다니는 길인데 그 떡집을 처음 봤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이게 웬 떡인가!' ^^ 그 떡집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내가 먹고 싶은 종류를 가리키며 즐거웠습니다. 돈도 몇 푼 들지 않고 마치 책을 고를 때처럼 사치를 부린 것입니다. 선물용 스티로폼 박스가 좀 작았습니다. 계산해 달라고 했더니 연분홍 보자기에 싸고 네 귀를 맞추어 잡아매었습니다. 이제 끝났는가 싶었는데 잡아맨 것이 꽃처럼 보이도록 매만졌습니다. 재바르고 정성스럽게 매만지는 그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바라보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떡 보자기를 받아 든 사람이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셨느냐?"고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만든 맛있는 떡이라는데 내 마음대로, 내가.. 2016. 8. 2.
겨울 엽서 '트로이'에서 온 엽서입니다. 수기(手記)로 된 그 내용은 '비공개'……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단 '대외비' 문서입니다.ㅎㅎ~ Michael Storrings가 그린 저 그림은, 아이들이 많아서 오래 들여다봐도 좋고, 저 숲을 지나 시가지, 눈 내리는 하늘까지 온 세상의 겨울이 참 좋구나 싶고, 원본에는 금가루 은가루가 붙어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는데, 여기에 그 원본을 그대로 붙여두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유감스럽고 곤혹스럽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수기로 된 엽서나 편지를 부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좋은 겨울입니다. 노루님께서 써주신 글을 읽고, 인터넷에서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실컷 봤지만 그분의 블로그 《삶의 재미》에 갖다 놓으신 세 작품 중 한.. 2015. 1. 15.
어느 교사와의 대화 선생님.............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함 때문에 잡은 책 몇 권을 완독하고 나서, 프로젝트를 계획하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독서 멘토가 필요한데, 제 마음대로 음…. 선생님을 나의 독서 멘토로 정해야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법석 떨다가, 학교에 급한 일 떨어져서 마무리하다보니, 또 흐지부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휴~~ 선생님, 막내 녀석이 올해 여덟 살입니다. 우리 학교 1학년에 데리고 다니죠. 남편 말로는 혈액형이 AB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여덟 살 남자아이입니다. 어제 할머니 밭에서 캔 감자를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만 원에 팔았으니까요. 하지만 감자 캐러 가기 직전,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 와서.. 2013. 7. 4.
그리운 사람에게서 온 편지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성복초등학교에 근무했던 ○○○입니다. 몇 년 동안 흘릴 땀을 올해 여름 한 해에 모두 흘려보내고 기막히게 들어맞는 입추 절기를 기점으로 다소 떨어진 기온에 그저 감사하며 방학을 보내던 중 책장을 정리하다가 성복교육과정이라는 라벨이 붙은 꽤나 두꺼운 파일철을 열었습니다. 7년이나 된 거니까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파일철을 열어 속지를 꺼내던 중… 그 속지는 단순히 연수물이 아니라 30대 중반의 제 청춘이었고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의 추억이었고 교장 선생님 그 자체였습니다. 석양이 지는 어스름 저녁의 이 시간에 저는 빛바랜 종이들을 어쩌지를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교장선생님께 인사 올리게 되었습니다. 연수물에 철해져 있던 파란편지 부분에서는 도저히 이 느낌을 어찌할 바를.. 2012. 8. 13.
K 교사에게 보내는 답장 K 교사에게 보내는 답장 K. 힘들어서 술을 반 병이나 해치웠다고? 아주 한 병을 다 '해치우지' 그랬어요? 1990년대 초 혼자 3년간을 지낸 사당동 그 이층 셋집에서 밤이면 교과서에 넣을 지도를 수작업으로 그린 적이 있어요. 그 숱한 밤에 아껴 두었던 여러 병의 술을 모두 '해치웠었지요'. 컴퓨터가 아니라 로터링펜을 쥐고 제도에 관한 아무런 도구도 없이 지도를 그린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싫은 고된 작업이죠. 내가 지도를 그리지 않아도 교과서는 나왔겠지만, "아이들에겐 바로 이런 지도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 지도들을 구상하고, 수많은 선, 기호를 그려넣고, 색깔을 정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서 가슴이 아려오는 걸 느껴요. 누가 그걸 알겠어요? 알아주기나 하겠어요? K의.. 2011. 5. 20.
K 교사의 봄편지 선생님. 자정이 지났습니다. 술도 반 병 해치웠습니다. 치고받고 싸운 두 녀석 부모 만나 중재하고, 한쪽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라서 우는 걸 달래고, 다른쪽은 지역 유지라 그 아이가 다른 애를 때려 놓았는데도 "요즘 아이들 폭력성 운운" 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어야 하는 짓을 했습니다. 하도 속상하고 가슴 답답해서 외부 사람 만나서 교장샘 욕, 아그들 욕 실컷 했습니다. 까짓것, 저거도 막 나가는데, 나도 막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운동회 무용, 우리 학년엔 후배들뿐이어서 제가 자원한 다음, 2주 넘게 음악줄넘기 연수 받고 동영상 찍고 음악 준비하고 난리쳤는데, 기어이 7080 코드인 부채춤을 하라고 강권하셔서 결국 애매한 부채춤 담당자 하나 더 생기고, 저는 그 음악줄넘기를 단체경기로 .. 2011. 5. 3.
그녀가 결혼한 이유 그녀가 결혼한 이유 요즘은 KBS TV의 「가요무대」를 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보고 싶어도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프로그램은, 쳐다만봐다 가슴이 뻐근해지게 됐으니 지난번에 끝난 드라마 「이웃집 웬수」나 「가요무대」 같은 편안한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어젯밤 「가요무대」는 '만추'라는 제목으로 가을 노래를 들려 주었고, 지난 8일 밤에는 설문조사로 광복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인기가 높았던 곡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광복 후 1940~1950년대에는 '꿈에 본 내 고향' '나 하나의 사랑'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만리포 사랑' '봄날은 간다'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곡이었고, 전체 1위곡으로는 '그때 그사람'이었는데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은 거.. 2010. 11. 16.
책 읽기 싫다! "책 읽기 싫다!" 이른바 '독서의 계절' 끝자락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강제 책 읽기 못하겠다" ○○대 학생회장 단식투쟁」1 좀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책 읽기를 둘러싸고 대학과 학생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 ◇◇◇ 학생회장(24·언론정보4년)은 정경대가 운영 중인 교양교육 프로그램인 '에피스테메(episteme)'에 반발해 지난 11일부터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에피스테메는 정경대가 학생들의 인문학 소양을 기르기 위해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 학과별 필독서와 추천도서, 학생이 결정한 도서 등 12권을 읽고 독후감을 내게 한 프로그램이다. ◇◇◇씨는 "에피스테메를 이수하지 못하면 장학금 신청이나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있다.. 2010. 11. 15.
ICT 교육자료, 누가 활용해야 하나 (2010.11.12) ICT 교육자료, 누가 활용해야 하나 경제 신흥국으로의 부상에 따라 교육의 결과 평가에는 ‘버블현상’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우리가 달가워하거나 말거나 한국교육을 칭찬한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지난 10월엔 안 덩컨이라는 미 교육부장관도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적 요구가 너무 많다는 일화가 부럽다”고 했다. 지난여름에는 뉴스위크지가 우리나라를 교육부문 세계 2위로 선정했다. 평가지표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과 평균 교육기간일 뿐인 결과였지만, 이 순위를 뒷받침하듯 이번엔 통계청이 나서서 교사 1인당 학생수(25.6명)는 G20 평균(19.5명)보다 많아서 교육환경은 좋지 않지만 ‘교육수준은 G20 국가 중 최고’라고 했다. 2006년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학 성적이 G.. 2010. 11. 12.
서울 플라자호텔 개조한 伊 디자이너 치옴피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 플라자호텔 개조한 伊 디자이너 치옴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이 750억원이 들어간 개조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부티크 비즈니스호텔'을 표방하며, 건물 외벽도 흰색에서 구릿빛으로 바꿨다. 특이한 점은 이 호텔 외관부터 객실의 가구와 거울, VIP 라운지의 탁자, 심지어 안내 데스크 여직원의 옷과 스카프까지 모두 한 사람이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귀도 치옴피(Guido Ciompi·49)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와 카타르의 여러 고급 호텔들과 밀라노, 나폴리의 구찌(Gucci) 매장을 디자인했다. 가구와 가전제품, 조명 디자인, 파티 행사장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가지고 있다. …(후략)… 호텔측에서는 왜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을 두고.. 2010.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