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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168

어느 학교 교직원연수회-고것들이 꽃이므로 어느 학교 교직원 연수 시간입니다. 교육청 혹은 교육부 직원 연수 시간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 학교(혹은 교육청, 교육부) 연수 업무 담당자인 블로거 '파란편지'는 (아, 파란편지의 멋진 변신!) 사회석으로 나가 강사 안내를 시작합니다. "선생님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께 ‘옥상정원’(정원 이름 "봄비 온 뒤 풀빛처럼") 일기를 쓰시는 준서 할머님을 소개합니다. 저는 지금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준서 할머님 이야기가 여러분께 우리가 교육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혹은 해석해야 하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고 진한 진정성을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님에게는 우리가 몇 날 며칠 동안 들어도 좋을 이야기들이 수두루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일단 화초 사진 몇 장을 보여주시면서 딱 하루치 일기만 들려주시기로.. 2020. 8. 18.
"나를 위에서! 상대를 위에서!" # 나는 코로나 전에도 나는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있을까?'('곧 죽을병에라도 걸렸나?') 싶어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했습니다. '죽다 살아나서 면역력이 떨어져 봐라. 감기 걸린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바람만 불어도 너도 걸린다.' # 코로나가 왔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쓰지 않은 사람이 보이긴 해도 대부분 쓰고 다녔습니다. 쓰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스크 쓴 얼굴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러던 것이 최근 - 코로나라는 괴물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 너도 나도 마스크를 벗어던졌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 바닥인.. 2020. 8. 16.
프란츠 카프카 「사이렌의 침묵」 2013년 5월 14일에 올렸던 자료입니다.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고나니까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에 띄는 대로 글씨체를 바꾸곤 했는데 본래의 날짜에 올린 것으로 저장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보러 오는 분은 끊임없지만, 댓글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으므로 댓글란을 없앴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오디세우스는 칼립소(트로이에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7년간 오지지아 섬에 잡아 두었던 바다의 정령 : 번역자 민희식의 주)의 분부대로.. 2020. 8. 11.
우리 집을 사신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제 반년이 지났으니까 우리 집(아, 아주머니 집)에 잘 적응하셨겠지요? 제 실내 정원(이런! 아주머니의 실내 정원)도 잘 있습니까? 그 작은 정원의 여남은 가지 푸나무들은 한 가지도 빼거나 보태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것들은 제가 그 집을 분양받고 처음 입주할 때 전문가를 초빙해서 만들었거든요. 꼭 심어주기를 기대한 건 남천(南天) 한 가지밖엔 없었고요. 그 전문가가 우리 집(아, 그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렇게 소파도 없이 책으로 채운 거실은 처음 봤다며 이 분위기의 실내 정원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거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물만 주면 되도록 해달라'는 특별 부탁을 했고요. 아주머니께서 집을 보시려고 처음 방문하셔서 그 실내 정.. 2020. 8. 9.
리호 《기타와 바게트》 리호 시집 《기타와 바게트》 문학수첩 2020 묵향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나는 돈키호테, 잡을 수 없다고 하는 저 하늘의 별을 잡는 적도의 펭귄 0 벼루에서 부화시킨 난에 하얀 꽃이 피었다 마모된 자리를 찾아 B플랫 음으로 채웠다 제 몸 갈아 스민 물에서 서서히 목소리가 자랐다 노송을 머리에 꽂고 온 사향노루가 어제와 똑같은 크기의 농도를 껴입고 불씨를 건네는 새벽 그늘을 먹고 소리 없이 알을 낳는 스킨다비스 줄기 끝에 햇빛의 발걸음이 멈춘 그 시각 무장해제 된 상태로 소파에 누운 평각의 그녀가 봉황의 눈을 깨트리며 날았다 익숙한 무채색으로 난을 치듯 아침을 그렸다 향 끝에 끌어당긴 빛으로 불을 놓으면 곱게 두루마기 걸치.. 2020. 8. 7.
이쯤에서 그만 입추(立秋)? S그룹 사보에서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방법-다산 정약용의〈소서팔사(消暑八事)〉'를 읽었다. 1. 송단호시(松壇弧矢)·소나무 언덕에서 활쏘기 2. 괴음추천(槐陰鞦遷)·느티나무에서 그네 타기 3. 허각투호(虛閣投壺)·빈 집에서 투호 놀이 4. 청점혁기(淸簟奕棋)·돗자리에서 바둑 두기 5. 서지상하(西池賞荷)·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 6. 동림청선(東林聽蟬)·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7. 우일사운(雨日射韻)·비 오는 날 시 짓기 8. 월야탁족(月夜濯足)·달밤에 발 담그기 이 형편에서 내가 적용해 볼 만한 걸 찾다가 올여름의 성격을 생각했다. 기상청은 더위가 길고 극심할 것으로 예고했다. 그 예고를 두어 차례 들었고 그때마다 열대야가 한 달 이상 지속된 재작년 여름을 떠올리며 두려워했다. 코로나 19로 .. 2020. 8. 5.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천재 과학자 27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존 브록만 엮음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나는 타고난 이론 물리학자였다. 구태의연하게 들리겠지만 소명이란 것은 존재한다. 내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갖고 있다.(91) 폴 데이비스(시드니 매콰리대학교 부속 오스트레일리아 우주생물학센터 자연철학 교수)는 '우주론이 나를 부른다'는 글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은 나를 괴짜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 가문 어느 구석을 살펴보아도 과학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처음 강사 자리를 얻은 직후에 친척의 결혼식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숙모가 내게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거니?" 내 할머니도 .. 2020. 8. 3.
그리운 독도! 내 친구 안동립 선생(주 동아지도 대표)이 지난 15일부터 23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독도를 다녀왔답니다. 그는 또 무슨 구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인지 궁금하지만 기다려봐야지요. 지금까지처럼 독도를 위한 일도 하고 돈도 좀 벌면 좋으련만...... 다 알 만한 모습들이고 첫째, 다섯째 사진에서 저 멀리 보이는 땅은 울릉도겠지요? 아, 그리운 독도… 사진을 보고 있으면 더 그리워지는 독도… 2020. 7. 29.
등산 혹은 산책, 삶의 지혜 뒷산 중턱까지 2킬로미터는 잘 걷는 사람은 사십 분쯤? 내 아내도 한 시간 삼십 분쯤이면 다녀옵니다. 나는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합니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아주 드러내 놓고 팔을 휘두르며 푸푸거리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삼십 분에 주파(?)하겠지요? 그렇게 애써서 올라가면 그다음엔 뭘 합니까? 나는 그 길을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을 하며 혼자 오르내립니다. 올라갈 때는 저절로 과거와 미래의 일들이 떠오르게 되고 내려올 때는 주로 현재의 일들이 생각나고 더러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합니다. 어슬렁거리는 꼴이니 힘들지도 않고 외로워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내려오며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 수 있으려나 했고, 카페에 들러 건강빵을 하나 사.. 2020. 7. 26.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김정하˙유제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하느님은 단지 은은한 숨결일 뿐이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고 우리는 작은 신들입니다." "하늘·땅·바다·공기·심연 그리고 지옥, 이 모든 것이 곧 하느님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녀가 예수를 출산한 후에도 처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그가 선량한 사람이거나 선량한 이의 아들이라고 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71~72). 『치즈와 구더기』? 소설인가 싶었는데 이탈리아 몬테레알레의 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본명: 도메네고 스칸델라)의 삶에 관한 역사책(微視史)이었습니다. 한 방앗간 주인의 역사책.. 2020. 7. 19.
코이 잉어 작가들은 품위 있게 이야기할 줄 안다. 그러니까 작가겠지? 박선우의 단편 「밤의 물고기들」에는 코이 잉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코이 잉어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성장하는 물고기"인데, 가정용 어항에서는 5센티미터, 큰 수족관에서는 30센티미터까지, 강에 풀어놓으면 1미터가 훌쩍 넘게 커진다. 사는 곳의 면적이 코이 잉어의 체적을 결정하는 것이다. 온기나 낙관, 선善과 선의에 대한 상상력은 코이 잉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고, 작다고 생각하면 겨우 머물지만, 어디에나 있고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드시 존재하며 하염없이 부피와 무게를 늘린다. 박선우의 소설 덕분에 나는 코이 잉어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울 수 있게 되었다. 편혜영의 에세이 「내가 기대하는 작가 박선우|.. 2020. 7. 16.
나의 노후·사후 십이층 할머니는 내 또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눈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그녀의 아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그제야 '우리'(그녀와 나)가 한동안 만나지 못한 걸 알아챘습니다. “가까운 요양원에 모셨는데 오늘 생신이셔서 외출 나왔습니다!” 아들은 가까이 모셨고 외출까지 시켜주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설명했고 그런데도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녀는 눈에 힘이 빠진 채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는 그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녀를 자주 떠올려보곤 합니다. 정말 괜히! 이층 할머니는 자그마한 키에 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만날 때마다 무슨 얘기든 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꽤나 곱다고 생.. 2020.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