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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가을45

이 가을 열매 훔치기 아파트 앞을 오르내린 것밖에 없는 것 같은 하루도 있습니다. 도서관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집에 있는 책이나 읽습니다. 찔레꽃 열매일까요? 도서관으로 들어가고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목제 계단 옆 이 아파트 화단에서 해마다 보았습니다. 사진 왼쪽 아래편에 우리 아파트 철책도 보이지 않습니까? 기회를 노렸는데 이번에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정수리는 환한 볼품없는 남자 주제에 이 열매를 바라보고 있으면, 게다가 허름한 스마트폰으로 이 열매를 훔쳐가는 모습을 우리 아파트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보면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얼마나 분통 터진다 하겠습니까? 그걸 내가 이렇게 찍어와 버린 것입니다! 올해는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2021. 10. 5.
모처럼 화창한 이런 날 2019년이었나? 그해 가을, 날씨가 좋은 날마다 나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른바 '공사 간에' 사소한 일들이야 늘 일어나는 것이고 마음이 흔들릴 만큼의 부담을 주는 큰 일만 없으면 살아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아도 불안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해 가을도 그랬겠지?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괜히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는 거나 아닐까?'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런 건 말도 꺼내기 싫지만 흔히 "전쟁 전야"라는 말을 쓰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진다더니, 이 가을도 오자마자 저 하늘이 더 높아진 것 같았다. 하늘이 정말 높아지나? 그건 아니겠지? 이런 하늘에 대한 좋은 묘사가 어디 있었지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소설 "하우스 키핑"(매릴린 로빈.. 2021. 10. 3.
답설재의 여름에게 미안하네. 그렇게 쉽게 떠날 줄은 몰랐네. '이 마당에 더위까지...' 그렇게 중얼거린 건, 나이만 먹었지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네. '팔월 한 달, 구월 초까지는 더 고생할 수도 있겠지?' 그 생각도 미안하네. 그래도 그렇지, 입추 이튿날 당장 떠나는 손을 내미는가. 펼쳐 놓은 건 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2021. 8. 8.
우리에게로 오고 싶은 가을 할머니, 이리 와 봐 저기 좀 봐 여기 들어오려고 하는 것 아냐? 아무래도 들어오고 싶은가 봐 ......................... 2020. 10. 21.
가을엽서 : 내 이명(耳鳴)은 스테레오 18일 오후, 저 숲을 지나는 바람은 스산했습니다. 매마른 가랑잎들이 온 거리를 뒹구는 듯 했고 그 바람들이 두런거리며 귀가를 서두르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 떠나버려서 텅 빈 초겨울 저녁 같았습니다. 8월 7일이 입추였으니까 사십일만에 가을을 실감한 것입니다. 저 길을 서둘렀습니다. 그 저녁에 올해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고 며칠 앓으며 지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가기가 싫어서 판피린만 부지런히 마셨습니다. 머리 안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듯한 이명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은지 이십 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 가을에 내 이명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변했습니다. 한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직선형(直線形)으로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파선(波線 물결선) 형태의 이명이 그 직선형과 보조를 맞춥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2020. 9. 26.
결별(訣別) 2009년 11월 2일, 나는 한 아이와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의 영혼을 저 산비탈에 두었고, 내 상처 난 영혼을 갈라 함께 두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새로 탑재하면서 댓글 두 편도 함께 실었습니다. .............................................................................................. …(전략)…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애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장래는 다 무엇이었을까. 장래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고달픈 삶으로써 고사리 같은 짧은 인생을 채우고 마감하게 되었는가. 그걸 살아간다고, 어린 나이에 뿌린 눈물은 얼마였을까. 그러므로 교육의 구실은 우선 그날그날.. 2020. 9. 26.
가을이 가는 걸 보셨습니까? 가을이 가는 걸 보셨습니까? 언제였습니까? 저렇게 걸어갔습니까? 언약은 있었습니까? 홀연히 떠났습니까? 인사는 나눴습니까? 그래, 괜찮습니까? 2019. 12. 6.
가을문 1 가을로 들어가는 걸 개별로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들어가겠습니까, 말겠습니까?" "……." "잘 생각해서 결정하십시오. 들어가겠다고 결정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일방통행입니다. 후회 없는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2 그 문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며 생각에 빠질 것 같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가을 속으로 들어가 버릴 수 있단 말이지?' '다시는 돌아 나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된단 말이지? 그 가을 어디쯤에 앉아서 좀 쉬다가 귀가(歸家)하거나 그럴 수는 없단 말이지?' '가버릴까? 아무래도 가는 게 낫겠지?' '그렇지만 말도 하지 않고 나왔는데……. 어수선한 자리도 그대로 두었고…… 소지품도 없이? 신용카드 한 장도 없이?…….' 3 문지기는.. 2019. 10. 8.
아파트 마당의 소음 초저녁에나 늦은 밤에나 아파트 마당에서 도란거리는 소리는 한적한 어느 호텔, 아니면 펜션에서 들었던 그 소음처럼 들려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던 그 대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러면 나는 제시간에 먼저 잠자리에 들 때처럼 혹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슬며시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지만 그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떠오르고 또 떠오르는, 그러나 점점 스러져가는 느낌입니다. 이 저녁에는 바람소리가 낙엽이 휩쓸려가는 소리로 들리고 사람들이 도란거리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든 속절없이 떠나야 할 여름의 서글픈 저녁입니다. 2018. 9. 6.
또 가네, 속절없는 가을……. 또 가네, 속절없는 가을……. 두어 번밖에 입지 않은 이 옷, 오늘 아침 버스 정류장에선 '안 되겠다. 제대로 입어야겠다' 싶었습니다. 2017. 10. 26.
봄여름가을겨울 그 미칠 것 같았던 봄여름가을겨울 텅 빈 채였던, 아무것도 없었던 봄여름가을겨울 나를 속이고 간 봄여름가을겨울 이제 와서 보이는 저 가을 그런데도 거기에 나는 보이지도 않는 가을 2017. 10. 9.
가을 구름 하늘 같은 건 바라볼 새가 없을 것 같아도 "왜 그렇게 사는가?" 물어볼 만한 처지가 아니어서 그저 '저렇게 사는구나……' 했던 이가 "올가을은 구름이 유난히 곱네." 했는데 순간 그게 그의 말이었기 때문에 시처럼 음악처럼 들리는 한 마디가 되었고 그러자 가슴만큼은 곱다고 자처해온 나의 정서가 후줄근해지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올가을의 이런 날들이 하루라도 더 길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2017.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