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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황현산3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2019.5.30) 《밤이 선생이다》(황현산)라는 책 속 이 일화에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와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방문교사가 등장한다. "다음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물음 아래 책을 읽는 사람, 모자를 쓴 사람, 낚시질을 하는 사람 그림이 나란히 제시되어 있다. 문제를 읽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모자를 쓴 사람을 짚어주면 된다. "이 사람이에요!" 틀릴 리가 있을까? 결과를 확인하기 민망할 정도로 뻔하다. 문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걸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문제를 출제하는 것일까? 묻고 답하기 훈련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일단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 이름을 알겠어요?" 이번엔 .. 2019. 5. 30.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2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2013 내 입장에서는 시론(時論)의 전범(典範)이라고 해야 할 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글(이 책 43~45)은 바로 그런 경우여서 여기에 실어놓고 싶었다. 주제는 내가 설정하는 것이니까 다만 '눈'에 관한 것이다.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로 두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내가 만난 '룸메이트' 가운데 법대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학창 시절 온갖 책을 가리지 않는 독서광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입을 열면 시정이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오로지 고시 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이었다. 새벽부.. 2019. 1. 16.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난다' 2013 1 며칠 전,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 삼거리 한복판에 난데없이 돌덩이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전면에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 하나가 큰 글자로 새겨져 있고, 아래쪽으로 더 작게 새겨진 글자는 그 거친 돌덩이가 무슨 바르게 살기 운동 협의회의 주관으로 세워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도 여기저기 고속도로의 나들목에서 이런 비슷한 문구가 새겨진 돌덩이들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말은 그 비석 앞을 지나가며 그것을 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부도덕자로 취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 2018.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