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던 날들2 푸르렀던 날들 (2) - 정영수(단편소설) 「기적의 시대」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남자친구(창동인지 어딘지 당시의 나에게는 이름부터 낯설고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지는 곳에 살고 기타를 잘 친다는)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쳐두고서라도, 그때 나는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말로 내뱉는 순간 그녀에게 실제와 다른 방식으로 가닿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그런 말이 아닌 실제로 다가가야 할 성질의 어떤 것이었다. 우리가 뭔가가 된다면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무언가, 적어도 전형적인 연애관계가 아닌 무언가여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러한 나의 진실된 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녀와 사귀고픈 .. 2019. 3. 9. 푸르렀던 날들 카페 키토를 지나 상수역까지 걸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눈이 흩날려 시야를 가렸다. 눈을 털어내느라 걸음이 뒤처졌다. 반면 에이치의 걸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길을 꿰고 있는 사람,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걸었고 나는 뒤를 쫓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바삐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어두워진 하늘을 봤다. 눈보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사람처럼 사거리에 잠시 서 있었다. 눈이 진짜 펑펑 오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펑 하고 나타나는 것 같아. 여기 펑, 저기 펑. 에이치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머리 위의 눈을 털어주었다. 시 쓰지 마. 승재는 뭐 하는 사람이야? 뉴질랜드 사람이야. 정지돈*의 소설 『야간 .. 2019. 3.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