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의 소설1 푸르렀던 날들 카페 키토를 지나 상수역까지 걸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눈이 흩날려 시야를 가렸다. 눈을 털어내느라 걸음이 뒤처졌다. 반면 에이치의 걸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길을 꿰고 있는 사람,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걸었고 나는 뒤를 쫓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바삐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어두워진 하늘을 봤다. 눈보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사람처럼 사거리에 잠시 서 있었다. 눈이 진짜 펑펑 오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펑 하고 나타나는 것 같아. 여기 펑, 저기 펑. 에이치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머리 위의 눈을 털어주었다. 시 쓰지 마. 승재는 뭐 하는 사람이야? 뉴질랜드 사람이야. 정지돈*의 소설 『야간 .. 2019. 3.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