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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7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결론 《노년》 《노년》 그 방대한 책에서 노년의 슬픔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나열한 보부아르는 짤막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보부아르는 결론에서도 결국 노년의 슬픔을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노년을 슬프게 혹은 반항적으로 맞아들인다. 노년은 죽음 자체보다 더 큰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우리가 삶에 대립시켜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차라리 노년이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다. 죽음은 삶을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면에서 죽음은 삶에 절대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삶을 구원한다. 현재의 과거에 대한 우위는─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그렇지만─현재가 과거에 있었던 것의 쇠퇴나 혹은 과거의 부인인 경우 특히 슬픈 것이다. 옛 사건들, 예전에 획득한 지식들은 생명의 불이 꺼진 삶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 2024. 2. 28.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강초롱 옮김, 을유문화사 2021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무거운 숙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은 척해봐야 별 수 없겠지. 시몬 드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서로를 부정해 온 사이였다. 딸이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했으니(그것만도 아니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어머니는 그랬겠지. "우리 집안에서 계약결혼이라니! 말이 돼?" 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 아주 편안한 죽음? 그런 죽음이 있을까 싶진 않고 죽음의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리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 올리고는 엄마의 왼쪽 다리를 붙잡.. 2024. 2. 14.
노년은 슬프다(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드 보부아르는 방대한 저서《노년》에서 노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제1부 외부에서 본 노년 제1장 노화와 생물학 제2장 민족학적 자료들 제3장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제4장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 제2부 세계 속의 존재 제5장 노년의 발견과 수락 : 육체의 산 경험 제6장 시간, 활동, 역사 제7장 노년의 일상생활 제8장 노년의 실례들 결론 아래는 제7장 '노년과 일상생활' 중에서 발췌해 본 문장들이다. 노년은 비참하고 슬프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말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노년은 슬프고 비참하다. 어쩔 수 없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결론에서 그 비참함, 슬픔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책의 부제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이다. 나는 그 결론, 부제를 보면서도, 노년은 .. 2024. 1. 22.
노인들은 왜 조롱을 받을까? '노인들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을 읽으며 신화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었을지 궁금했습니다(흔히 신화에서 근원을 찾지 않습니까?). 제우스를 찾아보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의 시대를 지배했던 티탄족과의 초기 전투에서 승리해 권위를 얻었다. 크로노스는 자기의 모든 자식들을 삼켜버렸으나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는 제우스를 돌과 바꿔서 그를 구했고,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그는 메티스를 삼켜서 한 몸에 힘과 지혜를 지니게 되었다. 제우스의 실용적 능력은 유명했으며 전혀 틀림이 없었고, 그의 판결은 비평의 여지가 없었다. 호메로스는 제우스가 정의의 황금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 2022. 10. 10.
인생은, 두서없이 삭제되어 가는 기억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②)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인 묘사도 못마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만 할, 노인이 보기에 비참한 내용이지만 베게트에게서도 "종말의 비참한 쇠락을 통한 삶에 대한 비판"(보부아르)을 발견한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썼다.(298~299) 〈승부의 끝 Fin de partie〉에 등장하는 노부부는 쓰레기통에서 쓰레기통으로 전전하며 지나간 행복과 사랑을 언급하다가 모든 사랑과 모든 행복을 규탄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영화 La Dernière〉와 〈아! 아름다운 날들이여! Ah! les beaux jours!〉에서 잔인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기억의 풍화 작용, 우리 뒤에 남은 우리의 모든 삶의 풍화 작용이다. 추억은 두서없이 삭제되고 파손된 채로 생소.. 2022. 10. 4.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인 묘사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연인이었다고 해서 좀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엄청난 작가였다. 노인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고 그 문제는 단지 지배 계급들 내부에서만 제기되며(게다가 남자들), 19세기까지 '늙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노인들이 많지도 않았다.(121) 노년은 비참한 것이다. 노년에 대해 위안을 받기보다는 낙심을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라고나 할까?(152~153)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50세까지 발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나이에 달해야만 '프레노시스'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노시스란 정당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신중한 지혜로, 체험되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 2022. 9. 15.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붓다가 아직 싯다르타 왕자였을 때이다. 부왕에 의해 화려한 궁궐 속에 갇혀 살던 그는 몇 번이나 거기서 빠져나와 마차를 타고 궁궐 부근을 산책하곤 했다. 첫 번째 궁 밖 나들이에서 그는 어떤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병들고 이는 다 빠지고 주름살투성이에 백발이 성성하며, 꼬부라진 허리로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그 사람은, 떨리는 손을 내밀며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댔다. 왕자가 깜짝 놀라자 마부는 싯다르타에게, 사람이 늙어 노인이 되면 그리 되노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싯다르타 왕자는 외쳤다. "오, 불행이로다.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취하여 늙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 2022.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