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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동시집6

문봄(동시집)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문봄(동시집)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홍성지 그림, 상상 2023 놀랍다. 새, 별, 이슬, 꽃과 나비, 시냇물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동시부터 나온다. 초록 달 한밤중에 거실에서 엄마 폰 아빠 폰 내 폰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는다 멀티탭 3구 밥상에 기다란 빨대를 꽂아 따듯한 전기를 쪽쪽 빨아 먹는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폰들의 마음속에 초록 달이 뜨는 밤 네모나게 부푸는 밤 폰드로메다? 두 번째 동시 제목에 나온다. 폰드로메다 오, 폴더 폰 깨진 폰 물 먹은 폰 구닥다리 폰 배터리 터진 폰 스피커 고장 난 폰 화면이 안 보이는 폰 버튼도 안 눌러지는 폰 모두 가자 폰드로메다로. 낮이나 밤이나 일하느라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친구들아, 날마.. 2023. 7. 16.
정나래 동시집 《뭐라고 했길래》 정나래 동시집 《뭐라고 했길래》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시 정나래 동시 이새봄 그림, 아동문예 2022 코코!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복잡한 얘긴 하고 싶지 않아요. 동시 한 편 보여줄게요. 밤나무 혼자 사는 할머니 밤사이 잘 주무셨나 궁금해하던 밤나무가 뒷마당에 알밤 몇 개 던져 보았습니다 날이 밝자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나옵니다 안심한 밤나무는 다음 날에 던질 알밤을 또 열심히 준비합니다. 코코는 어떻게 생각해요? 난 동시 쓰는 작가들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작가 마음은 정말 알 길이 없다 싶었어요. 알밤이야 줍는 사람 마음이잖아요? 할머니가 일찍 일어나 줍든지, 누가 얼른 가서 줍고 자랑을 하든지 시치매를 떼든지, 하다못해 다람쥐가 한두 개 가져가든지, 그런 거잖아요? 그.. 2023. 2. 23.
문성란 동시집 《나비의 기도》 시·문성란 그림·손정민 《나비의 기도》 고래책빵 2022 문성란의 동시를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조용한 시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넓고 크다. 조용히 그 세상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둥근 말 힘겨루기하더라도 찌르지는 말자고 둥그렇게 구부린 사슴벌레의 뿔 씩씩거리며 덤벼들다가 나뒹굴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다가가 겨루는 그 녀석들이 보고 싶다. 그 둥근 뿔이 보고 싶다. 정녕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일까... 사슴벌레를 보거든 아이들이라도 이 시를 떠올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라도?' 주제넘고 어처구니없지? 우리는 말고 아이들이라도? 친구가 좋으면 내 짝꿍 대구로 이사 간 뒤 "어데예―" "아니라예―" 대구 말이 들리면 내 귀는 쫑긋 장맛비 내리면 거.. 2023. 2. 20.
조영수 동시집 《그래 그래서》 조영수 동시집 《그래 그래서》 청색종이 2022 뛰어 옥수수를 갉아 먹다 물린 고라니가 절뚝이며 뛰어 그 뒤를 금동이가 컹컹컹 쫓으며 뛰어 나리가 금동아 이제 그만해 소리치며 뛰어 고라니가 강을 가로질러 뛰어 그 뒤를 소나기가 작고 하얀 발로 토도독 뛰어 금동이가 멈칫하더니 나리를 향해 뛰어 나리와 금동이가 집으로 뛰어 고라니가 휙, 돌아보더니 산의 품으로 뛰어 휴, 내 심장이 가만 있지 못하고 콩닥콩닥 뛰어 조영수의 동시는 소설 같다. 재미있다. 동시 속에 진실이 들어 있다. 흔히 소설 속에서는 발견되는 그 진실이 진짜 세상에서는 너무 귀해서 조영수의 동시에서 그 진실을 보는 순간을 즐거워하며 읽는다. 시인에겐 시적 순간일까? 조영수의 동시 속에는 그런 순간들이 꼭꼭 들어 있다. 숨구멍 교실 환경판에 .. 2023. 2. 17.
조영수 동시집 《마술》 조영수 동시집 《마술》 그림 신문희, 청색종이 2018 책 중에서도 동시집을 읽는 저녁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 시간이 선물 같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그렇다고, 선물 같다고 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복잡하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 동시집을 읽고 있으면 그 시간 아이들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영수 동시집 《마술》을 읽으며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즐겁다 재미있다 밝다 맑다 가볍다 우울하지 않다 세상은 괜찮다 ..................... 이런 것들이 이 동시집을 읽는 동안의 느낌이었습니다. 아, 시라고 해서 굳이 무슨 운율 같은 걸 넣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억지가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더욱더 .. 2022. 9. 7.
김순영 동시집《열 살짜리 벽지》 김순영 동시집 《열 살짜리 벽지》 소야주니어 2020 1 동시집을 보면(1960년대 초였지? 교과서 전성시대, 내가 생전에 동시집 같은 걸 볼 수 있으리라는 상상 같은 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생각난다. 나중에 교육부 편수관이 되어 교과서를 만들고 심사하고 관리할 때는 괜히 옆자리의 국어 편수관들을 미워했다. '꼴에 국어 편수관이라고?' 내가 국어 교과를 맡지 못하고 다른 교과를 맡아서 약이 올랐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나 같으면 이 시를 교과서에 실을 텐데…….' 꽃 식당 봄이 차린 향긋한 식당 꽃잎 간판 내걸었다 풀밭에 민들레 식당 담장 높이 목련 식당 큰길 옆 개나리 식당. 꽃 식당마다 손님 끌기 한창 '꿀' '꽃가루' 차림표 붙여 놓고 벌 나비가 종일..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