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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년40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16 2100년쯤 전, 키케로가 노년에 관한 불평을 반박했다. 불평은 다음과 같다. ⊙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이렇게 반박한다. ⊙ 노년에도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 체력 저하는 절도 있는 생활로 늦출 수 있으며, 정신 활동을 늘림으로써 체력에서 잃은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 감퇴는 오히려 노년의 큰 축복이다. 그래야만 정신이 제대로 계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쾌락이 모든 행위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 노년에도 정신 .. 2023. 9. 19.
희망가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단순한 선율의 이 노래가 떠오를 때가 있다. '희망가'인데도 처량하고 구슬프다. 흥청망청 엄벙덤벙 살았다는데도 굳이 원망스럽지도 않다. 어쨌든 이게 왜 '희망가'인지 모르겠다. 희망을 가지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실망가'일 수는 없었겠지?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단순한 선율의 .. 2023. 9. 16.
지나가버린 꿈의 나날들 나는 지금 자그마한 아파트에 삽니다. 처음엔 돌아눕기도 어렵겠다, 숨 쉴 곳도 없다 싶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더니 지금은 이만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 아파트에서 이렇게 작은 집들은 3개 동입니다. 어쩌다가 젊은 부부나 어린아이와 사는 집도 있지만 다 늙어서 부부가 등산이나 다니거나 뭘 하는지 둘이서 들어앉아 있는 집이 많습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잠깐이라도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늙어버린 부부가 타면 그들끼리나 서로 간에나 아무 말이 없고 무표정합니다. 주차장에 내려가보면 평일인데도 차가 별로 빠지지 않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 오는 집을 봐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들어갈 공간이 없어 버려져야 마땅한 서장,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큰 액자 같은 물건이.. 2023. 9. 3.
"안단테 안단테 Andante Andante" 저물어 석양이 붉고 내일이 휴일이어서 차는 끝없이 밀리고 몸이 굳어버린 건 이미 한참 되었어도 주차해서 굳은 몸을 펴줄 만한 장소는 보이지도 않는데 "세상의 모든 음악"(93.1) DJ가 아바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는 그 시절에 듣던 노래들의 가사를 번역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흥얼거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무슨 노래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뭘 알겠나?') 나는 세월도 그렇게 흘려보냈습니까? 아이들도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다 망쳐놓았습니까?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힙니다. 노래를 들으며 E대학교 영문과 교수를 지낸 P를 생각합니다. Take it easy with me please Touch me gently like a summer evening breeze Take your time mak.. 2023. 8. 15.
"HAPPY DAY,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지난달에는 보건소를 찾아가 PCR 검사를 받아야 했고, 5일간 병원을 드나들었고, 검사 때문에 7일간 음식 제한을 받았다. 와중에 어느 진료실 출입구가 저렇게 디자인되어 있는 걸 보고 고마워했다. 이번 달에는 딱 두 번만 다녀왔고, 이제 한 번만 가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아내에겐 미안하고 쑥스럽지만 나는 지금은 씩씩하다! 지난번에 다짐한 대로 지금 이 시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2023. 8. 9.
세월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텔레비전에서 오십 대 중반의 연예인들을 보며 살아갑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나를 모르지만, 나는 자주 그들을 의식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일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더 젊은 연예인들이 그들 오십 대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문득 저 오십 대 중반 연예인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금을 시작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곧,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는 걸 느끼게 되고 내일, 그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갔구나, 뒤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은 일흔에도 자식을 가져 세상을 놀라게 하는 한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든아흔에도 열정으로 살아가는 몇몇 유능한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세월은 성근 체에 담긴 고운 모래처럼 혹은 결국 긴 시간을.. 2023. 8. 3.
꽃이 진 자리 한때 파란 꽃이 더 많던 자리에 흰 꽃이 늘어나 주종(主種)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돌보지 않았던 저곳의 저 꽃들은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저버린 곳에 지금은 다른 종류의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 끝 무렵 그 풀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가버리고 다시 두어 가지 풀들이 새로 자리를 잡아 겨우내 근근이 혹은 꿋꿋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 꽃들을 들여다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 꽃들 중 어느 하나가 나에게 긴 세월에 비하면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진 않다고 거의 다 지나갔다고 이야기해주려고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2023. 8. 1.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직장을 구하거나 돈을 한 번 더 벌어보거나 다시 사람을 만나거나... 무엇을 새로 시작하거나 할 기회나 에너지가 소멸된다는 것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뭘 달라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염치가 없고 도리가 아니고 예의가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전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포기하거나 하는 사람은 게으르다느니 어떻다느니, 의례적인 헛소리를 하는 인간과는 일단 대화를 거부하고 싶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본 장면이다. # 1 나를 바라보는 모리츠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너를 보내고 싶지 않구나, 스밀라." 모든 인생은 정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모리츠는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 의자에 .. 2023. 7. 30.
몸이 불편한 날 마음이 불편한 날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니까 몸의 실체가 실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기가 탈이 나서 조정하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기가 불거진다. 불편해할 순서를 정해놓았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두더지 게임기 같다고 자신을 비웃는다. 이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단 한 사람에게만 미안하다. 표를 내지 않으면 좋겠는데 숨 쉬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어떤 달에는 미리 정해진 일정만 해도 일주일에 이틀씩 병원행(行)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를 땐 학교에 다녔고, 그다음의 아주 조금 알 만한 시기엔 직장에 다녔고, 퇴임해서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마음이 불편하면 순간 몸도 가라앉는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떨쳐버려야지, 일어나야.. 2023. 7. 6.
나이듦 : 알고자 하던 지성, 행하려던 의지가 부질없어 보인다 사부님이 두 팔을 벌렸다. 우베르티노는 사부님은 껴안으며 떨리는 소리로 울먹였다. 「잘 있게, 윌리엄. 그대는 광기의 용광로를 고아 먹은 듯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영국인이었네만, 마음은 늘 바로 쓸 줄 아는 참 좋은 사람이었네. 다시 만나게 되기는 될까?」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하느님도 그걸 바라실 테고요.」 사부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걸 바라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에서도 썼다시피 우베르티노는 그로부터 2년 뒤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성미가 불칼 같고 젊은이 뺨치게 혈기방장한 이 노인의 인생은 이렇듯이 험한 모험의 가시밭길이었다. 어쩌면 우베르티노는 성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굳센 믿음의 값을 한 자리 성위(聖位)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023. 6. 27.
나는 '꼰대'가 되어 살아가네 묻지도 않았는데 늘 먼저 '답'을 주려고 하고, 심지어 그 '답'조차 유효기간이 지났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묻지도 않은 답을 들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 답 속에 섞여 있을 자신에 관한 평가나 판단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일명 '꼰대' 기질은 나이 드신 분에게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오래 일했고, 많이 경험했으니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이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 구범준 세바시 대표 PD 「나이 들수록 '?'가 필요해」(《○○○○○》2022.11.)에서. 사람들이 "꼰대" "꼰대" 해서 어렴풋이 나이 들어 망령이 나기 시작한 사람을 보고 그러는가 .. 2022. 11. 7.
노인들은 왜 조롱을 받을까? '노인들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을 읽으며 신화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었을지 궁금했습니다(흔히 신화에서 근원을 찾지 않습니까?). 제우스를 찾아보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의 시대를 지배했던 티탄족과의 초기 전투에서 승리해 권위를 얻었다. 크로노스는 자기의 모든 자식들을 삼켜버렸으나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는 제우스를 돌과 바꿔서 그를 구했고,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그는 메티스를 삼켜서 한 몸에 힘과 지혜를 지니게 되었다. 제우스의 실용적 능력은 유명했으며 전혀 틀림이 없었고, 그의 판결은 비평의 여지가 없었다. 호메로스는 제우스가 정의의 황금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 2022.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