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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장12

다시 교장선생님께 (2023.9.1) 아무리 고귀한 지위에 있다 해도 교육자라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행정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반추해 보고 싶어 옛일을 떠올립니다. 교육자가 교육행정가보다 한 수 위라는 시시한 얘기는 아닙니다. 교장들을 한군데 다 불러놓고 부하 관료들과 함께 기세 좋게 등장한 교육감은 가관이었습니다. 박○○ 선수, 김○○ 선수 같은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명품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인재는 장차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도 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단지 그 이야기를 해놓고는 의기양양 다시 그 관료들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강당은 썰렁하고 씁쓸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돌연 '명품학교'라는 단어가 혐오스러워져서 결코 그따위 학교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느 학생들을 행복하게.. 2023. 9. 1.
교장 훈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간단히..." 운동장 조회 시간이었다. 나가지 않아도 아무도 못 알아챌 거라 생각하고 몇 번 안 나갔다가 주의 쪽지가 날아와서 요즘은 얼른 나가는 은영이었다. 방송으로 하면 딴짓이라도 할 텐데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은 꼭 화창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어째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늘 재미가 없을까. 교장 선생님 대상으로 누군가 재미있게 말하기 연수 프로그램을 좀 짜든가, 그도 아니면 짧게 말하기라도 하도록 방침이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은영은 투덜거렸다. 어쩌면 웬만해선 재미있는 사람들이 교장이 못 되는 건지도 모른다. 드물긴 해도 어딘가에는 분명 재밌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있을 텐데 다음번에 취직할 때는 알아보고 해야겠다. 그런 얘기를 얼핏 했더니 인표가 "우리 집안 아저씨예요. 까지 마세요." 해서 뜨악.. 2022. 10. 20.
퇴임 후의 시간들 퇴임 후 나는 힘들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낮에도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도 불안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고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사람이 그립거나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 증상을 다 기록하기가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러다가 비명에 죽겠다 싶었습니다. 숨쉬기가 어려워서 인터넷에서 숨 쉬는 방법을 찾아 메모하고 아파트 뒷동산에 올라가 연습했습니다. 심장병이 돌출해서 119에 실려 병원에 다녀왔는데 또 그래서 또 실려가고 또 실려갔습니다. 숨쉬기가 거북한 건 심장에는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잊히는 걸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른 십 년쯤 훌쩍 지나가기를 빌었습니다(그새 12년이 흘러갔습니다. 누가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겠습니까). 그.. 2022. 3. 15.
대화 그 아이는 가정 돌봄이 불가능한, 포기한 상태입니다. 열한 살.. 코로나 시국이 학교를 오다가 안 오다가의 반복된 상황으로 등교가 귀찮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석이 잦고, 연락하고 또 연락해도 깨워줄 사람의 부재로 늘 교무실팀이 데리러 가야 합니다. 친구랑 엮어주기도 했고, 일주일 등교 잘하면 떡볶이도 사주기도 했고.. 효과는 순간에 불가했습니다만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고 올 9월 신규 샘이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규 샘 왈 "아침에 제가 연락하여 등교시켜볼게요" 그렇게 매일 그 아이 집 앞에서 기다려 아이와 함께 등교하기를 반복, 잠시 잊었습니다. 안정되었나 보다.. 다시 결석과 출석이 반복되고 그 사이 사건도 생겼지만 하루하루 넘기던 12월 어느 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교.. 2021. 12. 13.
이 사람은 어떤 교장일까요? 다음 글에는 교장이 등장합니다. 소설 『하우스키핑』에서 옮겼습니다. 이윽고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작년에 반년 동안이나 학교를 빠졌더구나. 우리, 그 문제를 어떻게 할까?" "따로 숙제를 더 내주세요." 루실이 대답했다. "그러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너희는 영리한 애들이지. 그러니 노력만 하면 괜찮아질 거다. 그나저나 이제 정말로 바라야 할 것은." 선생님이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다. "태도의 변화란다." 루실이 대답했다. "제 태도는 변했는데요." 선생님이 우리를 차례로 하나씩 곁눈질했다. "그러니까 내 짤막한 훈계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냐, 루실?" "네. 필요 없어요." 동생의 대답이었다. "그럼, 너는 어떠냐, 루스?" "네, 그러니까 저도 필요 없는 것 같.. 2020. 1. 29.
제비뽑기로 정한 부장교사 (2018.7.19)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은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위에 유리판을 올려놓아 어항 아가리를 막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오르다가 유리판에 부딪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모두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올라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젠 어항 위의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어느 교장이 업무가 능숙한 10년차 이상 중견교사나 역량이 탁월한 교사에게 보직을 맡기면 좋겠는데 희망하는 교사가 적어서 기간제 혹은 신임교사에게 맡기거나 제비뽑기도 시켰다는 기사를 봤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 2018. 7. 20.
이양연 「야설(野雪)」 이 이야기는 야한 이야기, 굳이 한자로 쓴다면 '野說'이 아니고, '눈 내린 들판' 혹은 '저 들의 눈'이라고 해도 좋을 野雪이므로 '野說'을 찾아오신 분은 '바로' 돌아가시는 것이 낫습니다. 야설(野雪) 교장자격연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1999년 5월, 17일부터 1주일간은 LG인화원에서, 이후 한 달은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원연수원에서 지냈습니다.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여서 불철주야 일에 매달려 지내다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주입식 강의나 들어야 하는 당시의 교원대 연수원에서는 참으로 무료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유를 막론하고 교수나 학자, 교사들의 일방적 강의로 점철되는 연수를 혐오하고 경멸합니다. 만약 교사를 양성해 내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강의도 그런 식이라면 우리 교육은 요원하다고 단언하겠습니다... 2013. 5. 1.
댄스왕, 눈싸움왕, … 얘들이 지난번 재동이 대회에서 선발된 아이들입니다. 가령, 오목왕, 단거리달리기왕, 공기놀이왕, 칠교놀이왕, 체스왕, 팔씨름왕, 성냥쌓기왕, 댄스왕, 눈싸움왕 ……. 애들에게 맡겨두면 혼자 잘난 체하지 않고 각 분야 최고 전문가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멋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런 왕들에게 상을 주는 교장이니까 어쨌든 대단하지 않습니까? 2009. 12. 8.
이상한 교장할아버지 지난봄 어느 날 교장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지나가다가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교장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웃음이 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짢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기도 했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이상한’ 교장할아버지다. 근엄한 교장이 아니라 한없이 편안한 시골할아버지다. 아이들 교과서 뒷장에 나오는 편찬·심의위원이기도 한 우리 교장선생님은 오늘도 한국교원대학교에 교장자격연수 강의를 하러 갔다. 한 달에 두세 번 교장, 교감, 전문직 자격연수나 직무연수에 강의를 다닌다. 그러나 1년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이런 대외적 지위나 평판보다 더 커다란 것을 보고 느끼면.. 2009. 11. 10.
학교자율화 단상 Ⅰ Ⅰ 교육과정 운영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 L 장학사에게 분당 이우학교(대안학교)에 가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당장 다녀왔답니다. 장학사 발령을 받으면 처음에는 교육과정과 생활지도 업무를 맡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마 전국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분들은 모임에 나가서 누가 “어떤 업무를 맡았습니까?” 하고 물으면 “교육과정을 맡았습니다.” 하기가 좀 부끄러울지도 모릅니다. 교육과정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아직 ‘애송이’ 장학사라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교육과정 업무를 맡은 장학사들의 회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자리는 그야말로 ‘애송이판’이므로 그 장학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 저 사람도 아직 애송이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L 장학사는 ‘애송이’가 아닌데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 2008. 6. 11.
K 선생님의 우려에 대한 답변 학교를 옮겼을 때의 서먹서먹하고 서글픈 심정을 좀 이해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글에서 밝혔지만 저는 자신이 교장이 되어 있는 것에 그리 대단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대체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교장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그렇게 노력했으므로 교장 노릇을 의욕적으로 하겠다는 것을 떳떳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는 왠지 ‘이제 나이도 제법 들었으니 교장이나 하라.’는 명을 받은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경우, 처음부터 서글픈 느낌 같은 것은 전혀 가지지 않았다거나 이 자리에 앉자마자 의욕적으로, 그리고 이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그야말로 한 가족이 된 느낌 속에서 지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까? 그냥 짐작에 맡기겠습니.. 2007. 11. 19.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1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두고 온 아이들입니다. 지금 이곳 아이들도 충분히 아름답고 중요하고 정겹고 자랑스럽지만, 그 아이들도 늘 그립습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나를 다 잊어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정지된 순간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은 무료하지 않고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합니다. 이 '작품'은 그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여 사랑했던, 지금은 늘 그리운 서영애 선생님께서 2006년에 보여준 것입니다. 지난날들은 왜 모두 그리운 것입니까? 2007.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