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답설재 2025. 6. 2. 08:51

 

 

 

여기는 우리 아파트 피트니스센터 양쪽 출입문 사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 멋지게 치장하려고 가슴 높이로 예쁜 돌들을 깔아놓았다. 혹 바닥에 저 돌들을 깐 멋진 수족관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위험하다는 결론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예쁜 돌을 구입하는 데도 돈이 제법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돌을 찾으려고 저기 올라간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반가운 일은, 처음 두어 해는 잠잠했는데 차츰 풀이 솟아오르더니 해가 갈수록 풀의 종류와 양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풀들을 응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풀보다 돌이 더 많이 보였는데 올해는 저쪽 편으로는 돌보다 풀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 섭섭하다고 할 풀들이 많겠지만, 지난해까지는 민들레가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올해는 자운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늦봄, 나는 그 민들레 씨앗뭉치들을 보면서 저것들이 어디로 날아갈까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어디론가 다 날아가버린 모양이다. 자운영을 보면서 지난해의 그 생각을 떠올렸다.

 

자운영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민들레 씨앗처럼 낙하산을 타고 다니진 않으니까 일단 내년 봄에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민들레가 사라졌다고 섭섭해할 것은 아니다. 다시 낙하산을 타고 저기 내릴 수도 있고, 자운영(紫雲英)이 그 이름처럼 저 자갈밭을 구름처럼 뒤덮어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 해로울 건 없다. 다 좋다.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 관리인들은 벚꽃이 질 무렵에는 빗자루와 포대를 지참해서 아예 벚꽃 터널 아래를 떠나지 않고, 요즘은 보도블록 사이의 이끼까지 다 긁어내는 사람들인데 어째 저 위의 풀들은 그대로 두는지 알 수가 없다.

아름답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고 돌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는 내 생각에 그들도 동의하고 있을 수도 있다.

뽑아버려도 또 나면 되긴 하지만, 일단 뽑아버리려고 들면 하루식전이 아니겠는가.

 

이런 소리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낼 사람이 많겠지만(나도 주말만 되면 승산 없는 잡초와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이니 그 점 양해하기 바란다) , 나는 저 조악한 환경에서도 솟아오르고 꽃을 피우는 잡초들이 고맙고 든든하다.

하기야 그렇지 않다면 그게 무슨 잡초겠는가. 그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솟아오르고 꽃을 피우는 노력이 있어 세상이 덜 삭막한 것에 다행함을 느낀다.

 

우리도 대부분 저 풀들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