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답설재 2025. 5. 21. 21:33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김선형 옮김, 글항아리 2024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 오랜 세월 내가 줄곧 문학책만 읽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읽기'를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론 내밀한 벗이 된 책들로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가곤 했다. 나를 저 멀리 다른 세계로 훌쩍 데리고 가주는 이야기의 쾌감만으로도 마냥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 이 삶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끌어내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12)

 

 

명사의 '독서 체험기' 혹은 '독서 지침서'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독서에 대한 책이라고 해봐야 장황하게 내용을 소개하거나 현학적으로 해석하여 아는 체한 기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혹독하게 신랄하게, 그렇게 쓴 평론은 봤어도 그렇게 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없고, 이처럼 독서 이력을 소개한 책은 찾기조차 어려웠다.

 

그동안 나는 내 독서를 한심해했다.

읽은 내용을 잊는 건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밑줄 그은 것까지 기억에 없고, 그것도 엉뚱한 곳에 그어 놓은 걸 보고 기가 막히기 일쑤였다.

읽는 책마다 수긍하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끝나지 않은 일(Unfinished Business)", 뭐라는 거지? 하다가 책을 읽어가며 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독서란 세월이 가면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 다시 읽어봐도 역시 수긍할 수 없는 것, 다시 읽어서 그 의미가 다가오는 것......

 

내 독서도 괜찮은 것일 수도 있겠다. "좋다", "좋다" 하지는 말 것, 그대로 얘기할 것….

 

 

가끔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이나 『부활Regeneration』(팻 바커)을 다시 읽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온전히 받아들일 기분이 아닐 때 처음 읽고 그 후로 다시 읽지 못한 온갖 좋은 책을 생각하면 또 몸서리가 쳐진다. 어중간한 감상만 던져주는 책들이라면 딱 한 번만 읽어도 된다. 얼마든지 괜찮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196)

 

이번에는 그 책을 앉은자리에서 단번에 독파했다. 읽다 보니 예전에 이 책을 손에 들고도 이만큼 몰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에도 나는 책이 처음에 상정한 독자가 되기까지 성장해야 했고, 책은 그런 나를 내내 기다려주었다.(207)

 

젊은 여자로서 레싱을 처음 읽을 때는 남자들을 보는 이런 시각이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했다('그렇지! 이거지! 이거야!'). 하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당혹스러웠고('설마 죄다 이렇게까지 나쁠 리는 없잖아!') 그다음엔 "어, 잠깐, 잠깐만……" 소리가 나왔다.(212)

 

 

열 명의 작가를 이야기한다. 읽어보지 못한 작가가 대부분이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