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어가며 외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 쓰긴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걸 말하나 하지 않으나 끝은 끝이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정말로 '끝일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뻔한 것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할 때가 있어도 나는 묻거나 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사는 날까지는 그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고 살아보자는 생각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로울 땐 누구에게든 전화를 하지 않는다.
전화가 오면 가벼이, 즐겁게 대하고 즉흥적으로 가볍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내 심경을 그대로 알리진 않는다.
나는 외롭긴 하지만 본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고 훌쩍 떠난다면 그게 무슨 꼴이었겠는가 싶다. 성가신 일 거의 없이 하루하루 부탁받는 일이나 하면 그만이어서 이 외로움과 고요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이 나날이 고맙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설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몇 번이고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한때는 영원히 우리의 것처럼 느껴졌던 것을 다시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우리 눈에 들어왔던 사물과 풍경의 모습이며 들판에 홀로 선 교회, 종탑에 마련한 잠자리, 기억에 남은 목소리, 손길, 사랑스러운 얼굴, 그것들은 모두 가버렸고 고통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다시는 옥스갓비를 찾아가지도, 그곳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지도, 그곳의 소식을 전해줄지 모르는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옥스갓비는 그 모습 그대로, 진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오래전 내려놓은 펜의 말라붙은 잉크처럼 흘러간 과거로 봉인된 방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문을 닫고 들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할 즈음, 나는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