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

벚꽃 보며 미안하고 무안해 함

답설재 2025. 4. 15. 07:58

 

 

 

 

 

나는 일본이 물러간 바로 그때 태어났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미워하고 싫어하고 배척했다. '왜놈들, 철천지 원수...'

두렵기도 했다. "미국을 믿지 마라.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맹랑하다 싶은 그런 말을 하고 다녔다. '설마' 싶기도 하고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며 세월이 흘렀다. 언젠가 그 말이 《몽실언니》(권정생)에 등장한 걸 보며 옛 생각이 났었다.

 

물러갔다 해도 일본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어 곤혹스러웠다. 남들이 다 써서 나도 썼는데 알고 보니 일본 용어인 게 수두룩했다.

고학년이 되자 선생님은 점심 좀 싸 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어떤 아이가 '벤또'가 없어서 싸 올 수 없다고 했더니 사발에 싸와도 된다고 했다. 공연히 알루미늄 도시락을 멀리 생각했다. '벤또'에 점심을 싸 오는 한두 아이를 보며 저렇게 버젓이 일본 물건을 써도 되나 싶었다.

 

교정 앞에는 벚나무 고목들이 늘어서 있었다.

'왜놈들이 저희들 국화라고 심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베어 내면 되지 않나 싶어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봄이 되면 온 교정이 벚꽃 속에 파묻혔다. 그 모습을 보러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았다.

갈등을 느꼈다. '일본 국화를 좋아해도 되나? 무궁화보다 더 화사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그럼 이런 마음을 숨겨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안 하는지, 태평한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나는 숙맥이었다.

그 숙맥에게는 벚꽃에 대한 그 생각이 고정관념이 되었다. 두고두고 그렇게 여겼다.

'진달래놀이도 아닌 벚꽃놀이를 간다고?'

'하필이면 국회의사당 옆길에 벚꽃을 그렇게 잘 가꾸어 놓았나?'

'봄만 되면 온통 '벚꽃엔딩'이 울려 퍼지네?'

'아니, 이 동네에는 언제 벚나무를 이렇게 많이 심었지?'

'벚꽃을 저렇게도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스마트폰을 저리도 들이대네?'

......

 

언제 이런 잡념이 사라질까? 어떻게 하면 이 잡념이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그 인간들은 사라지고 있고, 벚꽃은 끊임없이 피었다 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