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

내게 옷을 입혀준 여인

답설재 2023. 2. 19. 08:24

 

 

 

경황 중에 깁스를 하고 대기석으로 나왔다.

성탄절을 앞둔, 눈이 많이 내린 이튿날이었다.

'자,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일단 집에 가서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하겠지?'

 

주의사항을 듣고 계산도 했으니까 겉옷만 입으면 귀가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무슨 수로 입지?' 그것부터 난제였다.

한 가지 한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한동안, 어쩌면 무한정으로 그게 줄줄이 이어진다는 건 계산하지 못했다.

우선 2kg짜리 거추장스러운 걸 팔에 붙여놓아서 겉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미안해서 아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한 것부터 후회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이 일어서서 말없이 겉옷을 받았다.

 

젊었던 날들의 내 고운 아내처럼

세상이 넓고 복잡한 걸 몰랐던 날들의 누나처럼

한 번만 만나보고 혼인을 하게 되어 아직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새댁처럼

마치 내가 싫다 해도 따라다니다가 난데없이 깁스를 하고 나올 나를 기다려준 사람처럼

........

 

그렇게 해서 그 옷을 입게 되었다.

그이는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나도 그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실례일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바라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만 했는데 여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며 '나는 누구를 도와준 적이 있나?' '몇 번이나 그렇게 했나?'......

약아빠진 생각이나 했고

늦은 저녁에 자리에 누워 깁스한 팔을 바라보며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그제야 기억 속 그 여인에게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