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은 이야기

신은영 「만약에」

답설재 2012. 10. 8. 10:27

만약에

 

 

                                                                        신은영

 

 

당신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제, 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나를, 이라고 묻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당신이 시를 읽는다면 혹은 쓴다면

당신은 반드시 속았습니다

난 한 번도 시에 진실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전에 당신께서 진실을 마주할 생각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당신을 사랑한 사람은

당신을 위해 생명을 주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인정할 것입니까

 

당신은 당신을 택할 것입니까 그를 택할 것입니까

당신을 위해 죽은 한 사람을 알게 된다면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한평생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큰 물살을 거슬러 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도 그를 위해

생명을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한 번 눈길이라도 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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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영 1985년 전주 출생. 2008년 『시인세계』 등단.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문학이 좋은 것은, 그것이 철학이나 교육학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시를 보고, 그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그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고,

그 소설을 쓴, 그 시를 쓴, 소설가, 시인을 붙잡고

"이게 사실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이게 모두 진실입니까?"

혹은

"이게 교육적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시인, 소설가는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시인은, 「만약에」라는 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이보다 더 절절할 수가 없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한번 진실해지자고 대어든다.

모든 걸 걸고, 모든 걸 주었다고 고백한다.

영원을 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코 왕(王)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삼고,

마침내 죽은 목숨이 되어 사랑한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흘러간다는 이야기.

당신이 그 사랑을 알기나 하느냐고 묻는 이야기.

지금 그 사랑의 맹세에 대하여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의 무엇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이야기.

영원을 약속해주는 종교보다 더 절절한 이야기. 

 

문학이 좋은 것은,

철학이나 교육학보다 더 진실한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