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은 이야기
김원길 「立春」
답설재
2012. 2. 17. 22:48
立 春
아침에 문득 뒷산에서
다르르르르
다르르르르
문풍지 떠는 소리가 난다.
아, 저건 딱따구리가 아닌가
맹랑한 놈
얼마나 강한 부리를, 목을 가졌기에
착암기처럼 나무를 쪼아
벌레를 꺼내 먹는단 말인가
아직 눈바람이 찬데
벌레들이
구멍집 속에서
기지개 켜며 하품소리라도 냈단 말인가.
옛사람들은 무얼로
벼룻물이 어는 이 추위 속에
봄이 와 있는 걸 알았을까
감고을축입춘(敢告乙丑立春)이라 써서
사당 문에 붙이는데
다르르르르 다르르르르
뒷산에선 그예
문풍지 떠는 소리가 난다.
김원길 『들꽃 다발』(길안사, 1994)
입춘이 지난 지 2주째입니다.
한파가 몰아치고 체감온도는 영하 십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창문 너머로 먼 산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람들 입방아도 무섭습니다. "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서로 아는 척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뭐 이번에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걸 누가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아무 준비 없이 봄을 맞은 햇수가 칠십 년 가까워 부끄럽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인생의 봄을 맞는 이들은 얼마나 기다려지는 새봄일까요? 축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아쉬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