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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159

"저 이제 학교 다녀요! 즐겁게 지낼게요!" "그래! 축하해! 입학 축하해~ 개학 축하해~ 뭐라고 해야 좋을까? '파이팅!' 하면 돼? 어쨌든 잘 지내기를 빌게~ 모든 일 잘 이루어지기를 빌게~ 무엇보다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바랄게~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안전하시기를 빈다고 전해줘~...... 좋은 말 있으면 다 해주고 싶어. 알겠지?" 2022. 3. 2.
"아빠! 얼른 또 만나~"(아빠들에게, 세상의 선생님께) ★ 아빠들에게 2011년 8월 23일 오후, 전철역에서였습니다. 열차를 갈아타려고 걸어오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별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아빠! 또 봐~" "아빠! 잘 가~" "아빠! 얼른 또 만나~" "아빠! …………" "…………" 멀어져 가는 거리를 그 외침으로 메워보려는 듯 그 아이는 연달아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외침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환승역은 언제나 번잡합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의 외침이 너무나 애절해서, 아주 또렷하게 들려서 '아빠!' 그 외침이 들려오는 곳을 찾아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이는 이미 인파에 묻혔을 것입니다. 순간! 키가 큰 삽십 후반 아니면 사십 초반의 그 아빠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꾸자꾸 뒤돌아보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얼.. 2021. 12. 17.
대화 그 아이는 가정 돌봄이 불가능한, 포기한 상태입니다. 열한 살.. 코로나 시국이 학교를 오다가 안 오다가의 반복된 상황으로 등교가 귀찮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석이 잦고, 연락하고 또 연락해도 깨워줄 사람의 부재로 늘 교무실팀이 데리러 가야 합니다. 친구랑 엮어주기도 했고, 일주일 등교 잘하면 떡볶이도 사주기도 했고.. 효과는 순간에 불가했습니다만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고 올 9월 신규 샘이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규 샘 왈 "아침에 제가 연락하여 등교시켜볼게요" 그렇게 매일 그 아이 집 앞에서 기다려 아이와 함께 등교하기를 반복, 잠시 잊었습니다. 안정되었나 보다.. 다시 결석과 출석이 반복되고 그 사이 사건도 생겼지만 하루하루 넘기던 12월 어느 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교.. 2021. 12. 13.
"선생님은 어떤 교육자가 되려고 합니까?" 이 자료집 집필자 중 한 명이 원고를 보내면서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런 입장이 아닌 것 같다면서 두어 차례 사양했는데 막무가내로 졸랐습니다. 그는 연전에 나는 글자 하나 쓴 적이 없는데도 여러 집필자의 선두에 내 이름을 달기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참 당혹스러웠는데 이번에는 그렇지는 않은 경우였지만 추천사를 써준다고 돈을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드디어 내 명성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열심히 살아가는 선생님이니까(연구도 많이 하며 가르치고, 이번에는 용감하게 두 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을 데리고 중국에까지 간 교사니까) '써주자!' 결정했습니다. 책을 받아보니까 저런 모습이었고, 추천사를 무려 여섯 명에게서나 받았는데(이런 경우 자칫하면 우스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2021. 12. 9.
W. H. Davies 「가던 길 멈춰 서서」 W. H. Davies의 시 Leisure의 전문입니다. 콜로라도 덴버의 "노루"(과학 교수) 님이 영문으로 소개한 작품인데,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에세이)에서 발견했습니다. 가던 길 멈춰 서서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 2021. 12. 2.
명퇴한다는 K가 저...인가요? 선생님, 혹시 명퇴한다는 K가 저...인가요? (아름다운 교육자..라는 구절이 있는 걸로 봐서는 제가 아니고, 선생님 주변의 또 다른 교사이신 듯하고.) 일단 저도 선생님께 명퇴 운운했으니, 제게 던지시는 일갈로 여기고 읽어보았지요. (교단 세월은 꽤 되지만, 세상일에 멍청이라는 표현은 저를 정확하게 꿰뚫으시는 말씀이라, 또 저인 것도 같고.) 마지막 구절에, 저 아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말씀에 도달해서는... 이유 모를 눈물이 왈칵 솟고 마는 저의 주책. 아이들과 교단이 저의 그리움의 대상이었던가요? 미련한 제가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일상 속에서 정작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인지하지조차 못하고 있는 건가요?(세상 그런 똥멍청이가 다 있나요?) 제가 이들을.. 2021. 11. 30.
정해진 칸에 예쁘게 색칠하기 예전엔 이런 학습지가 없었습니다. 등사기가 있긴 했지만 그건 거의 시험지 인쇄 전용이었고 '학습지'라는 게 나타난 건 복사기가 보급된 이후입니다. 그래서 그 예전에는 색칠하기, 숫자를 차례로 이어서 모양 찾기 같은 과제는 여름 겨울 방학책에나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걸 단시간에 해치우고는 "아니, 오늘 공부는 벌써 끝장이 났잖아!" 하고 호기롭게 일어서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이런 공부가 즐거운 건 이미 윤곽이 그려져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색을 선택해도 좋은 자유를 누리며, 거의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하니까 '누워서 떡먹기' 같은 이런 것도 참 좋은 공부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얼마나 삭막합니까? 마스크를 쓴 채 하루 일과를 치러야 한다는 건 얼마나 가혹한 일이겠습니.. 2021. 10. 9.
학교, 마음 편할 날 없는 곳? 중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나는 단 1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로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로나는 시험이 닥치면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받으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질문인데도 쥐가 찍찍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오거나 아니면 쉰 목소리가 떨려나오기 십상이었다. 칠판 앞으로 나가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면--달거리를 하지 않을 때조차--치마에 피가 묻은 것처럼 굴었다. 칠판 앞에서 컴퍼스로 그리기를 해야 할 때면 손이 미끌미끌할 정도로 땀범벅이 되었다. 배구를 할 때면 공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다른 애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해내야 할 때마다 내 반사 행동은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실업 실습 시간이 끔찍이 싫었다. 공책에 회계 장부를 .. 2021. 9. 8.
학교장 인사 교장의 인사말은 그 교장의 철학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의 전근을 아쉬워하는 첫 번째 학교를 떠나 두 번째 학교에 도착하니까 엄청 서글펐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괜찮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수준을 이야기하고 교사들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교장은 우스운 인간입니다. 지금도 그런 인간 있습니까? 똑똑한 교사 두어 명만 있으면 학교 일 잘할 수 있다는 인간. 그런 인간은 학교를 서류 만드는 공장으로 여기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그 인간이 보기에 똑똑하지 않은, 똑똑한 교사 두어 명 이외의 선생님들이라는 걸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 학교 일 잘하는 그런 인간들은 아이들에게는 해충(害蟲)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느 곳에나 있으므로 .. 2021. 5. 22.
"녹말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1971년 어느 날 과학('자연') 수업 시간... 어언 오십 년이 지났습니다.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려보는 초간단 실험이었는데도 나는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는 "보라색으로 변한다"이고 일제고사 문제지의 "( )색으로 변한다"의 ( ) 안에 '보라'를 써넣으면 그만이라는 건 아이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나는 굳이 실험을 강행하고 있었습니다. 강행? 나는 그 시골 학교에서 과학실 수업을 실시하는 유일한 교사였고 아이들도 그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실에 대해 생색을 내기 일쑤였지만 주입식 수업이 교사나 학생이나 피차 더 편하다는 걸 아는 아이들은 '그까짓 걸 가지고 뭐...' 시큰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행'이 맞긴 맞겠습니다. 밝혀두거니와 내가 지.. 2021. 4. 10.
리셋해봤자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교육에 관한 문장을 눈에 띄는 대로 옮겨봤습니다. 지긋지긋한 면도 없진 않지만 교육으로만 살아온 인간이어서 퇴임한 지 오래됐는데도 교육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자가 아닌 사람들이 교육을 보는 눈에 감동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교육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웃고 조롱하는 관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는 흔히 있었습니다. "모든 성격에는 일종의 특정한 악의 경향이 있죠. 타고난 결함 말예요. 그것은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극복할 수 없습니다."(66) 콜린스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타고난 결점은 교육을 받거나 사람을 .. 2020. 11. 25.
유치원은 몹쓸 곳인가? "살인자의 화장법"으로 등장해서 문명을 날리는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2004년엔가 유소녀기의 화려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베고픔의 자서전"에서 유치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37~38). 그녀는 일본에서 유치원(요치엔)을 다녔다. 그 일본을 엄청 따스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묘사하면서도 유치원에 대해서만은 앙갚음을 하듯 두들겨주었다. 겉보기에는 다 앙증맞아 보이는데, 속은 비열했다. 나는 첫날부터 요치엔을 향해 끝도 없이 혐오감을 느꼈다. 민들레반은 육군 훈련소였다. 전쟁을 하라면, 좋다. 하지만 호각 소리에 맞춰 무릎을 뻣뻣이 펴고 걸으면서 여선생으로 변장한 하사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복종하는 것, 이건 내 존엄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었고, 다른 아이들의 존엄성에.. 2020.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