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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8

이 얼굴 Ⅸ (국민배우 안성기) 그에게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물으면 언제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온화하게 부드럽게 그러므로 착하게 생각하라고 권유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겠지요. '나이는 나보다 많은 것 같은데 왜 저렇게 까칠할까?' # 오래 전에는 그가 광고에 나오는 경우는 동서식품 '맥심' 말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광고 한 가지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고, 그의 명성으로 보면 다른 광고에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도 그렇게 했습니다. 광고에 많이 나오는 것이 적게 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건지, 한꺼번에 수억 원을 받는 것이 수천 만원, 수백 만원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건지…… 그런 걸 떠나서 하는 얘기입니다. # 그가 저렇게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까 '잘하는 척' 커피를 마셔대던 일들.. 2011. 5. 30.
글쓰기의 괴로움 - 가령 시론 쓰기 ○ 너무나 하기 싫은 일 : 초고 쓰기 - 이유 : 무엇을, 어떤 차례로, 어떤 자료들을 참고하며 쓴다는 메모도 해놓지 않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생각하며 그 생각을 따라 쓰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 때로는 텔레비전도 켜져 있고 누군가(!)가 자꾸 얘기를 해서 대답까지 해주어야 한다. - 결과 : 짧은 글인데도 사람이 지치게 되고, 나중에 읽어보면 조리가 없어서 자꾸 고쳐야 한다. - 해결 방법 : 구상한 것을 메모해 두고, 그 메모에 따라 쓰게 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실천 여부 :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 : 사전에 메모를 하는 일이 다시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 결론 : 남이 보면 어쭙잖은 글이지만,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다. ○ 초고를 검토하기에 좋은 시간과 장소 .. 2011. 5. 15.
金春洙 「내가 만난 이중섭」 내가 만난 李仲燮 金春洙 光復洞에서 만난 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金春洙 詩集 『南天』(槿域書齋, 1977), 88~89쪽. 西歸浦에 가면 '이중섭미술관'에 가 보십시오. 西歸浦에만 가면 '이중섭미술관'에 가보십시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는 李仲燮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성악가 김동규는 TBC 방송 「아름다운 당.. 2011. 5. 13.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지 못하는 것 나는 마침내 가시 철망들을 통과하여 폐허 사이에 와 있었다. 그리하여, 평생에 한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삶은 한껏 은혜 입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장엄한 12월의 햇빛 아래서, 나는 정확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 시대와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나에게만 제공된 것, 그 버려진 자연 속에서 정말로 오직 내게만 제공된 것을 발견하였다. 올리브나무들로 가득 뒤덮인 공회소로부터 차츰 저 아래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마을로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투명한 대기 속에서 몇 웅큼의 연기가 솟아올랐다. 쉬임없이 쏟아지는 눈부신 차가운 햇빛 아래 숨이 막힌 듯, 바다 역시 고요했다. 세누아로부터 오는 먼 닭 울음 소리만이 오래 가지 못하는 낮의 영광을 축하.. 2011. 5. 11.
1등급 학생들은 스스로도 잘해낼 수 있네 에릭 홉스봄이 젊은 날 그의 스승에게서 들은 충고랍니다. "자네가 가르쳐야 할 사람들은 자네처럼 총명한 학생들이 아니네. 그들은 2등급의 바닥에서 학위를 받게 되는 보통 학생들이야. 1등급의 학생들을 가르치면 흥미는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잘해낼 수 있네. 자네를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보통 학생들이란 것을 잊지 말게." ◈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건 대체로 학생들의 사고 활동을 불러일으키고 그 과정과 결과로써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시 더 깊은 사고의 골짜기나 더 넓은 사고의 들판으로 데리고 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말을 잘 하는 아이들을 주 대상으로 하기가 쉽게 됩니다. 그런데 홉스봄은 1등급 아이들과 어우러져 뒤쳐진 아이들에게 "실례를 저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1등급인 아이들은 교사.. 2011. 5. 9.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 그(녀)가 내게 독(毒)을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장미향수였다면, 고전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 장미향수를 받은 사람에게는 감동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장미향수를 주었으므로 상대방도 내게 장미향수를 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독이었다", 그런 일도 있을 것 같다. 아니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에(아, 이런... 이미 3개월 전이네!) 『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되었네』를 얘기한 그 음반에는 「당신이 마실 장미향수를 주겠네」라고 표시된 것이, 다른 음반을 찾아봤더니「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로 표시되어 있는 걸 봤다. ① '당신이 마실 장미향수를 주겠네.' ②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 2011. 4. 24.
가련한 우리말 가련한 우리말 Ⅰ "이날 ○○○은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은 금발의 헤어와 비비드 컬러의 펑키한 의상으로 브리티시 록이란 장르를 어필했다." 새로 쓰이는 외래어로 말하면 '인터넷 서핑(internet surfing)'을 하다가 발견한 기사의 한 부분입니다. '참 나쁜 사례구나!' 하고 착각하지는 마십.. 2011. 4. 19.
독서, 너만은! 독서, 너만은! Ⅰ 2011.3.22.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아이입니다. …………. Ⅱ 책에 대해 말할 때 흔히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읽는가?" "왜 읽어야 하는가?" '왜 읽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가령 이런 대답들입니다. "재미있어.. 2011. 4. 17.
봄! 기적(奇跡) 봄! 기적(奇跡) ♣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었습니다. 재해는 갈수록 험난하고, 정치, 종교, 교육, …… 우리가 더 잘 살아가려고 하는 일들로 인한 갈등이 까칠하게 느껴져서 때로는 그런 것들이 '왜 있어야 하는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 봄날, 그런데도 햇살은 야.. 2011. 4. 13.
"初夜? 이렇게 해보세요" "初夜? 이렇게 해보세요" Ⅰ 2003년 어느 날 일입니다.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아침에 장관실에서 들어갔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교육을 줄이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침 신문을 살펴보다가 접으며 푸념처럼, 넋두리처럼 불쑥 던진 교육부 수장의 그 질문에,.. 2011. 4. 11.
다시 온 봄 겨우내 눈밭에 뒹굴어도 괜찮을 만큼 '튼튼한' 점퍼 한 가지만 입고 지냈다. 문밖에만 나서면 '무조건' 그 옷을 입었고, 더구나 털모자까지 뒤집어썼다. 한심한 일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969년 봄부터 딱 41년, 출근을 하는 날이면 '무조건' 정장을 하다가 그렇게 하자니 어색했지만, 그것도 며칠이지 곧 익숙해졌다. 이월에는 복장을 좀 바꿔 볼까 했다가 그만둔 건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봄이 왔다는 말을 믿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까짓 거'? 그렇게 가소롭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핏줄에 스탠트라는 걸 집어넣었으니 이젠 괜찮겠지' 했는데 몇 달만에 다시 실려가 그걸 또 한 번 집어넣고 나니까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고, '내 핏줄은 걸핏하면 좁아질 수 있구나' 싶어 지레 .. 2011. 4. 2.
후줄근하고 추레한 동기생들 대학 동기생 모임을 하면 매번 대여섯 명 정도가 모여 식사를 한다. 한때 교육자였고 피끓는 열정을 토로할 줄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럴 일도 없고 아니 아무런 일도 없고 있을 것도 없고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이야기를 나 혼자라도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대부분 건강해서 나보다 십여 년씩은 더 살겠지만 저들도 후줄근하고 추레하긴 마찬가지다. 정장을 할 필요가 거의 없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정성들여 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280명인가가 함께 졸업했다. 우울했으나 지금보다는 찬란했던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 다닐 땐 저 자리에 모인 저들과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그건 저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2011. 3. 13.